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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를향한무비워>1.반도체버금가는 전략산업 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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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1895년 3월22일 뤼미에르형제에 의해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최초로 움직이는 영상이 선보인 지 내년으로 1백년.인간이 발명한 유일한 예술장르로 손꼽히는 영화는 지난 1세기 동안 미국과 유럽이라는 두개의 축을 중심으로 제각기 독특 한 성격의 영상문화를 형성해왔고 이제는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에 버금가는주요 전략사업으로까지 발전했다.최근에는 제3세계 영상작품의 부상이 두드러지면서 세계영화계의 흐름은 70~80년대의 미국독주시대에서 새로운 제2의 창조시대를 맞 고 있다.주요영화제와 현지취재를 통해 오락.예술 사이를 오가며 치열한 선점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영화산업의 동향을 살펴본다.
[편집자註] 「2000년대를 향한,그리고 영화의 순수성을 되찾기 위한 백년전쟁」.
할리우드가 세계영화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에 결코 동의하지않는 프랑스인들이 영화탄생 1백주년을 맞아 준비하고 있는 「영화예술 재발견작업」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이를 위해 내년에 펼쳐질 본격적인 행사를 앞두고 이미 가동을시작한 「프랑스 영화 1세기 준비위원회」의 다양하고 엄청난 기획은 영상종주국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영국.미국등 세계 주요 영화제작국들의 협력속에 프랑스가 주도하고 있는 1세기 준비위의 위원장은 프랑스의 원로배우이자 감독인 미셸 피콜리.공동 실행위원으로는 공연조직전문가 알랭 크롬베크와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을 거쳐 현재 주간으로 있는 세르주 투비아나에게 맡겨졌다.
한때 아비뇽연극제를 총지휘했고 지금은 파리의 가을축제 총연출자로 낯익은 크롬베크는 『우리는 지나간 1세기를 기념하거나 축하하자는 게 아니다.다가올 두번째 세기에 영화가 어떤 위상을 가질 것인가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밝혔다. 2000년대를 향한 영상전쟁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90년대 들어 세계영화계에 불고있는 이른바 아시아계의 「황색바람」과 맞물려 산업적.예술적인 측면에서 세계영화계의 판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연이어 열리는 세계 영화제에 미국.유럽 외에 또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는 제3국의 작품과 영화인들의 이름이 빈번하게오르내리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미국영화는 위대하다.그러나 비미국영화가 살아남아야 할 이유 역시 명백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올해의 경우만 보더라도 칸영화제에서는 중국의 장예모,대만의 에드워드 양,캄보디아의 리티 판 등이 자리를 굳히거나 새롭게 선보였다.
주로 젊은 감독들이 출품,영화제작의 향후 흐름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로카르노영화제에서는 이란감독들이 상을 휩쓰는 이변을 낳았고 중국작품들이 또 한번 열렬한 지지를 끌어냈다.이제는 예상치 않던 베트남까지도 프랑스적 영상이미지를 업고 신흥영화제작국으로 부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
로카르노영화제에 모인 비평가들은 『이제 유럽인들은 영화를 통해 새롭게 아시아를,정확히는 중국을 배우려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이들은 12억의 잠재 관객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부상은 한국영화계에도 심각한 여파를 미칠 것이라고 덧 붙였다.
유럽에서 불고 있는 중국열풍은 한국작품에도 덩달아 관심이 쏠리는 긍정적인 부대효과와 함께 중국의 그늘에 가려 2류급 영화로 인식되는 부정적인 효과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섞인 충고다.
미국이 이미 『람보』와 같은 흥행작의 중국내 배급권을 불과 2만5천달러에 넘기는 미끼작전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제작 뿐만 아니라 배급부문에서도 중국이 지닌 시장잠재력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세계영화계의 판도는 대자본의 유무가 영화제작의 승패를 결정짓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며 이는프랑스는 물론 영화 신흥국들을 고무시키고 있는 요인이다.
독일.일본등 2차대전의 주축국들이 경제적인 부흥에도 불구하고자체적인 영상산업을 키워내지 못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특히일본의 경우는 자본과 영화산업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례로 꼽힌다.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만난 日本 가와키타 기념영화 문화재단의 여성기획자 하야시 가나코는 일본영화계의 침체에 대해 『일본자본은영화예술 자체에는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정부도 마찬가지다.따라서 영화제작은 감독이나 인디펜던트들의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고 실토한다.
이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할리우드영화에 떠밀리는 와중에도 끝까지 영화의 예술적 측면을 지키고자 애쓰는 프랑스인들의 고집은 미국영화가 가지지 못한 또 다른 잠재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佛 1세기 기념사업 주도 파리 몽파르나스거리에 자리잡은고몽사 계열의 한 극장에서 만난 중년 여선생은 극장을 찾는 이유를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영화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라고말했다.바로 이같은 이유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미국이지만 이를평가하고 자리 매김하는 것은 여전히 프랑스나 유럽의 비평계라는주장에 대해 미국인들 역시 반대하지 않는다.
할리우드영화가 비록 최근 들어 비슷한 내용의 영화들을 되풀이하는 창조력의 공백기를 맞고 있다는 혹평을 듣고 있기는 하지만미국식 대량생산체제가 쉽사리 무너질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러나 영화는 결코 단순한 오락이 아 닌 창조적인 예술작업이라고 믿고 있는 정부.영화인,그리고 관객이 있는 한 프랑스나 제3국의 움직임은 세계영화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파리=鄭淵秀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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