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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품 너무 비싸 못사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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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시내 리플레이 백화점. 20대 후반의 한 칠레 여성이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그녀는 "사고는 싶은데 값이 좀 비싸다"고 말했다.

이런 고객을 잡는 데는 자유무역협정(FTA)이 힘을 쓸 것 같다. 칠레의 관세(단일)는 6%지만 여기에 부가가치세(19%)와 판매마진 등을 감안하면 FTA가 한국 제품의 경쟁력을 10%쯤 올려주기 때문이다. 구자경 KOTRA 산티아고 무역관장은 "지난해 한국의 대(對)칠레 휴대전화 수출은 약 25% 줄었다"고 말했다. FTA로 관세를 물지 않는 경쟁국 제품에 시장을 내준 결과다.

칠레는 2002년 10월 브라질.아르헨티나 등과 자동차 무관세 협정을 맺었다. 그 후 브라질에서 만든 외국차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난해 브라질의 대 칠레 자동차 수출은 1백%나 증가했다. 그 사이 한국차의 칠레 시장 점유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칠레는 이미 36개국과 FTA를 맺고 있다. 웬만한 나라는 다 무관세로 자국 제품을 칠레에 내다판다는 얘기다. 이 판에 관세를 꼬박꼬박 물고 들여오는 한국 제품은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 현지 상사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고르 가라풀리 칠레 농림부 국제국장은 "득실을 따져보면 당연히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한국에서 왜 FTA 비준이 안 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한 송이에 3백원쯤 하는 포도가 한국에선 6천원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물류비를 감안해도 20배의 가격 차이가 말이나 됩니까." 한국 출장에서 막 돌아온 박남기 LG전자 칠레법인장은 이제는 개방문제에 소비자들의 권익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겨울에는 포도가 나지 않아 수입해도 피해볼 농민도 없는데 (농민 보호라는 근거없는 명분에 밀려) 소비자만 봉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KOTRA의 具관장은 "농촌 출신 의원들은 FTA의 득실을 차분히 따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칠레 FTA 체결로 인한 농촌의 피해 예상액을 10년 간 5천8백억원으로 전망하고, 이보다 두배 이상 많은 7년간 1조5천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산티아고=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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