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공부시키지않는 대학-시간강사 위주 싸구려 교양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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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학을 나온 일반 직장인들은 대부분 지식을 고교때 입시준비과정에서 얻은 것이며,대학에서 배운 것은 별로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외국어학원 이름있는 강사의 강의는 대학생들로 초만원을 이루고늦게 가면 앉을 자리도 없지만 불평 한마디없다.물론 출석도 부르지 않는다.그러나 어느大 어느교수의 교양영어 강의가 그렇게 인기가 있어 학생들이 몰리는가.
대학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안고 입학한 학생들이 대학교육에 실망,학습의욕을 상실한다.대학 강의가 형편없다.교과내용도 가치가 없다고 한다.교수의 권위도 없다.결국 이런 문제를 덮어둔 채 공부를 않는다고 학생들만 탓할 수는 없다.
대학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가의 문제다.대학의 연구기능도 중요하다.그러나 대학재정의 대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강의가 연구보다 우선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대학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를 따졌는가.대학강의도 서비스다.서비스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를 외면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교양과정의 60%이상을 시간강사에게 맡겨 싸구려 「세일」강의를 한다.
교수를 채용할때 연구능력위주로 평가해 고임금의 교수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강의에 역점을 두고 강의교수 확보율을 1백%로끌어올려야 한다.즉 강의전담교수제를 도입해 강의에 대한 책임만을 물어 부실한 대학강의를 일소해야 한다.최소한 박사학위 소지자는 시간강사가 아닌 계약제 전임강사 이상으로 대우해야 한다.
이는 현재의 각 대학 재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앞으로는 강의와 연구에 대한 역할분담도 고려해야 한다.물론 교수평가제가 전제돼야 한다.교수평가제에 대해「교권이 실추된 상황에서 학생들에 의해 악용의 소지가 있다」는 우려의 주장은 옳지않다.오히려 교수평가를 안했기 때문에 교 수의 권위를잃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르치는가의 문제다.한마디로 들으나마나 한 강의를 오로지 학점따기 위해 억지로 듣고 있다.특히 교양과정이 그렇다.
교양과목의 경우는 60년대의 내용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고작 교련과 국민윤리등 몇몇 과목이 없어졌을 뿐이다.교과과정이너무 낡았다.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과내용이 없다.교수들의 사고가 낡았고 변화에 인색한 무사안일 때문이다.10 년전의 강의노트를 그대로 들고와서 강의를 하니 변할리가 없다.
어떤 교양과목은 90%이상을 시간강사에게 의존한다.그러니 흥미를 잃은 학생들로부터 강의가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그리하여 대학생들이 외부 학원으로 몰린다.등록금도 부담되지만 학원수강이라도 해야 뭐 좀 배우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대학이 사회가 필요로 하고 학생들이 갈증을 느끼는 산교육을 외면하고 있다.대학이라면 고상한 학문을 가르쳐야지 학원과같은 교육을 해서 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그러나 그것은 사회의 변화를 외면하는 사고다.
물론 고상한 학문을 전수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전공과정에서는 당연하다.문제는 교양과정이다.
영문학과에서는 영문학에 권위있는 훌륭한 연구업적을 쌓은 교수가 필요할 것이다.그러나 교양과정 학생들에게 인기있는 어학강의를 하는 강의전문교수도 필요하다.
그들은 외국어뿐만 아니라 고도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컴퓨터와 전자기술을 공부하고 싶어한다.또 고전음악이나 보컬그룹과 같은 대중음악을 배우고자 한다.현대미술에 관심을 보이고 만화 그리기에흥미가 있다.
왜 이런 과목의 강의를 담당할 전문가를 교수로 모시지 못하는가.학문의 권위자도 좋지만 각 분야에서 명성있는 강의전문교수를모셔야 한다.결국 교양과정의 부실교육이 시정되지 않고 알찬 대학생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60년대의 교육내용과 사고방식으로 2000년대를 대비한 선진학생을 가르친다고 한다.대학생들의 학습욕구를 충족하는 산교육을할때 학생들이 면학에 충실할 것이다.그러한 노력이 개혁적으로 시도되는 대학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
◇필자약력▲서울大 물리학과 졸업▲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박사▲美MIT 객원연구원▲광운大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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