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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자들이 내 부처요 스승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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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훈장을 받고나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네요. 초심으로 돌아가야겠지요.”

비구니 정현(53·대구 보현사·사진) 스님이 최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교도소에서 법회를 통해 수형자들을 교화해온 공로다. 정현 스님은 4일 이렇게 강조했다.

“그동안 장관 표창이나 대통령 표창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가슴이 뛰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알겠더군요. 제가 섬긴 이들이 수형자가 아니라 바로 ‘부처’임을 말입니다.”
 
정현 스님이 교도소에서 ‘부처님 말씀’을 펴기 시작한 이유는 ‘사소한 경험’이었다. 1970년대 말, 정현 스님은 대구 동화사 내원암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때 암자에 있던 작은 병풍을 도난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에 신고한 끝에 결국 도둑 두 명이 붙잡혔다.

“도둑들은 중년의 남자들이었어요. 자식도 두세 명씩 두고 있더군요.” 스님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저들이 교도소로 가면 누가 처자식을 먹여 살릴까.’ 결국 스님은 경찰에 선처를 부탁했고, 그들은 방면됐다.

“그 일이 인연이 됐어요. 그 후로 대구 동부경찰서 경승실장을 맡게 됐죠. 그리고 80년대 중반부터 교도소 법회를 시작했죠.” 정현 스님은 처음 교도소에 갔다가 돌아와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수형자들의 삶이, 그들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워서였다.

그런데 정현 스님은 “이제 그들이 나의 스승”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수형자들이 불쌍한 중생으로만 보였어요. 제 마음이 그렇게 본거죠. 그런데 10년이 지나자 달라졌죠. 그들이 ‘나’를 깨우치려는 부처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제야 수형자들이 동등한 인격체로 보입디다. 그걸 깨닫게 해줬으니 그들이 나의 스승이죠.”

정현 스님의 교도소 교화는 올해로 22년째다. 그동안 많은 이들을 만났다. “길거리에서 ‘꾸벅’하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청송감호소나 대구교도소에서 제가 교화한 사람들이죠. 그들의 표정이 참 밝아요. 그럼 저도 알죠. 부처님의 말씀을 새겨듣고, 다시 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구나.”

스님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나 무기수도 직접 만나보면 대부분 ‘평범한 이웃’이라고 했다. “한 순간의 잘못이죠. 그걸로 범죄자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을 안아야지요. 그게 ‘부처의 마음’입니다.”

정현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의 유일한 비구니 상임감찰로도 활동 중이다. 종단의 부정과 비리 등을 감사(監査)하는 호법부 상임감찰을 비구니가 맡은 것은 불교 사상 처음이다. 그는 주로 종단 내 비구니 스님을 대상으로 한 감찰활동을 벌이고 있다.

백성호 기자,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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