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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다 해 줄게 … " 헬리콥터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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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김미정(56.가명)씨는 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를 찾았다. '2007 정보통신 취업.창업박람회'에서 채용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다. 김씨는 기업 부스를 돌아다니며 담당자에게 채용 과정과 조건을 묻고 있었다. 들고 있는 종이 쇼핑백에는 각 부스에서 얻은 자료가 가득했다. 그는 "딸이 갈 만한 곳을 찾으러 왔다"며 "사회 경험이 없는 딸보다는 내가 좀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씨의 딸은 지난해 대학을 졸업했다. 김씨는 "취업이 도움이 되는 학원도 내가 다 알아봐 줬고, 자격증도 내가 따라는 걸 땄다"며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박람회장에서는 기업 부스를 찾아다니는 김씨 또래의 중년층이 적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아들.딸의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박람회 주관사 중 하나인 한국노총의 조갑룡 특수사업국장은 "대학입학 시험도 아니고 취업까지 부모의 뜻에 맡기는 세태를 보니 답답해진다"고 말했다. 자녀의 노는 것부터 학교생활까지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헬리콥터 부모'들의 활동 범위가 자녀의 취업과 직장생활로 확대되고 있다.

서울프라자호텔에 근무하는 최모씨는 "입사시험 때 '자녀가 외국생활을 오래 해서 면접이나 적성검사를 보는데 힘들 것 같은데, 내가 직접 가서 우리 애의 장점을 설명하면 안 되겠느냐'는 어머니까지 있었다"며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부모들의 이런 행동은 자녀가 취업한 이후에도 나타난다. H개발은 최근 신입사원 교육 차원에서 '현장 순회근무'를 실시했다. 이 회사 인사팀의 권모 대리는 순회근무 이틀째 되는 날 한 신업사원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통화 내용은 간단했다. "우리 아들은 곱게 자라서 그렇게 힘든 일을 못하니까 다른 자리로 배치해 달라"는 것이었다. 권 대리는 "신입사원이면 누구나 하는 근무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사무직으로 원상 복귀시켜 달라고 떼를 써 정말 황당했다"고 말했다. 일부 부모는 자녀를 매일 출퇴근시켜 주고, 자녀가 독립된 사무실에서 일하면 청소까지 도맡아 해주는 경우도 있다.

외국에서도 헬리콥터 부모의 '적극적인 활동'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5월 "GE와 보잉사에는 합격자 가운데 '아직 부모와 상의하지 않아 입사 결정을 못하겠다는 젊은이가 많다"고 소개했다. 일부 부모는 자녀를 대신해 연봉협상을 벌이기도 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이훈 연구원은 "부모의 경제력이 좋아진 데다 자녀를 1~2명만 낳아 일일이 챙겨주면서 자녀의 독립심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치열하게 어려움을 뚫은 외환위기 세대와 달리 포스트 외환위기 세대들은 어려움을 이길 내성이 부족하고 직업의식마저 결여된 경우가 많다"며 "이런 경우 회사를 떠나면 장기 실업자가 될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김기찬 기자

◆헬리콥터 부모=자기 자녀를 위해 학부모가 헬리콥터처럼 학교 주변을 맴돌며 사사건건 학교 측에 간섭하는 것을 말한다. '헬리콥터 부모'는 아이의 숙제와 점심 메뉴까지 관련 학교 측에 수시로 전화하는 것은 물론 대학 입학 전형 자료인 에세이까지 전문가를 동원해 써 주기도 한다. 1990년대부터 미국 미디어에서 자주 사용된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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