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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EYE] 오일 쇼크 오지 않는 이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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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21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훌쩍 넘어 ‘유가 100달러 시대’로 치닫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경제는 지난 1970년대 두 차례 오일 쇼크와 같은 충격과 위기감이 없다. 세계 언론들부터가 유가의 고공 비행을 쇼킹하게 다루지 않는다. 최대의 수입국이자 소비국인 미국의 재무장관은 “고유가가 경제에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고용과 경제는 여전히 나아지고 있다”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깎아내렸다. 그래서 하버드의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는 ‘오일 쇼크들은 다 어디 갔나’라는 물음을 던졌다.

1973년과 79년 두 차례 오일 쇼크로 세계 경제는 73년부터 82년까지 세 번의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었다. 그러나 2003년 이후 유가가 5년째 줄기차게 치솟고 있음에도 세계경제의 성장과 인플레는 대체로 안정을 견지하고 있다. 웬일인가.

우선 유가가 다른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올랐다는 점이 지적된다. 1979년 이란 혁명 직후의 유가를 지금의 실질가격으로 환산하면 배럴당 100 내지 110달러가 된다. 그때의 충격을 느끼려면 유가는 배럴당 120 내지 130달러는 돼야 한다는 것이 도이체방크의 계산이다. G7 국가의 경우 일인당 연간소득으로 1980년에는 320배럴 내지 350배럴을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456배럴을 살 수 있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달러 가치 하락이 한몫 더한다. 원유 대금을 달러로 받는 산유국들은 달러 가치가 내리는 만큼 손해를 보는 반면 수입국들은 원유 도입 대금이 그만큼 싸져 버틸 여력이 생긴다. 2003년 이후 유가는 달러 기준으로 150% 오른 데 반해 유로화 기준 78%, 영국 파운드화 기준 87%가 올랐다. 나라마다 편차가 커 세계적 쇼크로 번지지 않고 있다.

오늘의 고유가가 쇼크로 느껴지지 않는 까닭을 경제학자들은 세 가지로 풀이한다. 세계의 경제구조가 과거보다 훨씬 에너지 효율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첫째다. 경제가 서비스화하고, 에너지 다소비형 제조업 비중이 줄고 슬림화하면서 유가 상승에 덜 민감해졌다는 얘기다. 고유가는 그 원인이 공급 축소냐 수요 증대냐에 따라 느끼는 충격이 크게 다르다는 점이 둘째다. 1970년대 오일 쇼크는 갑작스러운 수출 중단 등으로 공급이 급감하는 ‘공급 쇼크’였다. 지금의 고유가는 세계적 활황에 따른 꾸준한 수요 증대 때문이다. 따라서 일시에 유가가 3∼4배 폭등하는 공급 쇼크 때에 비해 최근의 유가 상승은 훨씬 덜 급진적이라는 점이 세 번째다. 이는 수요 및 소비 주체들이 고유가에 적응하기가 훨씬 쉬워졌음을 의미한다. 유가가 오른 만큼 소비를 절감하거나 다른 소비를 줄여 충격을 흡수하는 자기 조정력도 두드러진다.

유가 급등의 거시경제적 영향은 미미하다 해도 소비자와 가계 등이 고유가로 받는 미시경제적 고통은 별도의 정책적 관리가 필요하다. 앞으로 5년 동안 세계 석유시장은 긴장이 극히 팽팽할 것이라고 국제에너지기구가 경고한 바 있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들의 소비는 줄어들 것 같지가 않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공급 능력은 지난 25년 동안 15%가 줄었다. 신흥 산유국 정부들의 석유 무기화로 국제 석유회사들은 확인매장량의 20% 정도만 통제하고 있다. 석유채굴 및 생산 정제 비용은 10년 전 대비 5배로 높아졌고, 특히 정유 시설은 확장이 없는 채 90% 이상 거의 완전 가동하고 있어 조그만 사고와 차질에도 가격이 급등할 우려가 다분하다. 게다가 달러 하락은 바닥을 모르고, 넘치는 국제유동성과 투기자본이 석유시장을 넘나들어 유가는 줄기차게 오를 수밖에 없다.

과거와 같은 오일 쇼크는 없다고 해도 쇼크를 항상 안고 살아야 할 정도로 쇼크가 내재화(內在化)됐다고나 할까. 세계 6위의 석유 소비 대국인 한국의 대응 전략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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