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경제학>결혼시장의 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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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대 여성들의 대화에서 유별나게 잘 쓰이는 말이 있다.「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거기에는 설익은 그들 나름의 인생관이 농축돼 있다.남편과 가정에만 얽매이는 결혼생활이란 덧없는 삶이며 그런식으로 살아온 엄마의 길을 다시 걷 지 않겠다는주장이 짙게 깔려있다.좀 튄다 하고 느껴지는 30대 이상의 여성들도 스스럼없이 20대의 견해에 동조한다.어느 출판사는 X세대의 정서를 살려 기성세대의 엄마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듯한 선전 문구를 전면에 내걸고 특정 번역 서적의 판촉활동에 나섰 다. 우리나라 여성의 이혼 평균 연령은 33세다.결혼한지 5년도채못돼 결별을 선언하는 사람이 전체 이혼자의 40%선에 이른다.이들의 상당수는 직업여성이며 어느 정도의 경제력도 쌓았다.그들은 소득이 높아지면서 自意識도 강해졌고 또 자기 스타일의 인생을 선언했다.그럴수록 이혼 인구가 더 늘어날 것인가에 관심이모이고 있다.우리의 이혼율은 인구 1천명당 1.3건으로 선진국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가정에서의 활동을 기업의 경제활동과 비교해 설명한 美시카고大의 베커교수는 부부의 평균 결혼연수와 직장에서의 평균 근속연수가 거의 같다고 분석했다.미국은 그 기간이 양쪽 모두 평균 7년이었다.마릴린 먼로가 주연한 영화『7년만의 외출 』에서 보듯부부가 결혼한지 7년만에 위기가 찾아왔다.우리의 경우 근로자들이 한 직장에서 일하는 근속연수는 5년이 채못되는 4.6년이나결혼해체 때까지 이혼부부의 평균 동거기간은 이보다 긴 8.4년이었다.그런데 이 동거기간이 점점 짧아져 직장에서의 근속연수에접근하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일본인들의 근속연수 10.9년은 평균 결혼연수 10.8년과 거의 비슷하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의 결혼시장은 노동시장만큼 심한 변화를보이고 있다.그 변화의 속도와 내용이 앞으로 또 얼마만큼 달라질 것인가에 따라 경제 및 사회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노동시장에서 근로자들의 격심한 이동은 경제발전 단계에서 볼때 피할수 없는 일이다.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결혼시장의 변화는 경제성장의 속도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거기서 빚어지는 性의 갈등은 선진국과 다른 형태가 될지 모른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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