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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최후의 만찬’이 손상 심한 건 다빈치가 화학에 문외한인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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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고등어에 많이 들어 있다는 불포화지방산이 미술의 역사를 바꿨다? 거장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경’은 사실 낮 풍경을 그린 것이다?

미술 서적의 봇물 속에서도『미술관에 간 화학자』(랜덤하우스)는 도드라지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미술관에 걸어들어간 화학자’는 홍익대 화학시스템공학과 전창림(53) 교수다. 화학자의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 미술은 신선하다.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유채와 템페라 기법을 함께 사용했다. 템페라는 안료를 갤 때 계란노른자를 넣는 방법이다. 노른자는 접착력을 높이기 위해 넣는 것으로 50% 이상이 수분이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기름’인 유채기법과 템페라는 상극인 셈이다. ‘최후의 만찬’이 다른 작품에 비해 유독 심하게 손상된 이유는 어울릴 수 없는 두 기법이 충돌한 탓이다. 수지 균형이 깨어져 상 분리가 일어난 것. 전 교수는 “미술뿐 아니라 기계공학, 천문학, 기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성을 드러냈던 다빈치도 화학에는 문외한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취학 전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고교 때까지 미대 진학을 꿈꾸었던 그는 돌연 화공과에 진학했다. “아버지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어요. 제가 화학을 공부해 가업을 이어주길 바라셨거든요.” 그의 부친은 포스터컬러로 유명한 ‘알파색채’의 창업주 전영탁 회장이다.

화학도가 된 뒤에도 미술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던 그는, 1981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에 빠져들었다. 빡빡한 학사일정 속에서도 어떻게든 시간을 냈다. “미술 책을 많이 읽었고, 루브르·오르세·퐁피두… 미술관 무료 개방일이면 하루종일 살면서 그림 구경 다녔어요. 당시 파리에 살던 백수남·김기린 화백과도 친하게 지냈어요. 생각해보니 과학자보다 화가들을 많이 만났네요.”

가욋일에 눈을 돌린 전 교수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과학자가 웬 미술이냐고, 외도라는 비난도 받았어요. 하지만 저는 ‘인류에 유익을 준다’ 는 과학의 본령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한 탓에 ‘최후의 만찬’ 같은 불후의 명작이 비운의 명작이 되지 않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는 현재 홍익대 미술대학에서 미술재료 강의를 하고 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 창조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미술이나 과학이나 똑같지 않나요?” 그는 어린 시절 품었던 화가의 꿈을 화학이라는 붓으로 그려내고 있다.

글=이에스더,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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