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산 지키려 ? 공작설 ? 자존심 ? … 김경준 한국행 선택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투자자문회사 BBK의 전 대표 김경준씨는 왜 한국으로 송환되는 길을 선택했을까.

그는 BBK 후신인 옵셔널벤처스를 통해 주가를 조작하고 회사 자금 380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던 중 2001년 말 미국으로 도주했다. 2004년 미 연방수사국(FBI)에 붙잡혔으나 송환을 거부하고 지금껏 LA연방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그러다 대선 정국에서 마음을 바꾼 것이다.

2004년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미 국무부에 보낸 '범죄인 인도 청구서'엔 그가 여권 및 법인설립허가서를 위조하고(최고 징역 5년), 회사 자금 380억원을 횡령했다(최고 무기징역)는 등 9가지 혐의가 적혀 있다. 어느 것 하나라도 확정되면 실형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때문에 이명박 후보 측 은진수 변호사는 "김씨가 송환을 택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당 안팎에선 "왜 귀국하는지 미스터리"란 얘기도 나왔다. 정치권에선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주장과 추측이 떠돌았다.

① "미국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것"=한나라당에선 "김씨가 '말기 암' 환자 신세"란 표현이 나왔다. 언젠가 한국으로 송환될 수밖에 없는 처지란 얘기다. 41세의 김씨가 무한정 교도소 생활을 할 순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김씨는 재산을 미국으로 다 빼돌렸다"며 "한국으로 오면 미국 내에서 진행 중인 재산 관련 민사재판은 흐지부지돼 결국 미국 내 재산은 지킬 수 있다고 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김씨의 누나 에리카 김도 김씨와 관련된 자금 세탁 등 혐의를 인정, 변호사 자격을 상실할 처지"라며 "김씨가 가족들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했다. 김씨의 미국 내 재산은 300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② 정치공작설=한나라당은 "김씨가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굳이 이 시점에 돌아오는 건 여권과 정부의 개입"이라고 주장한다. 차명진 의원은 1일 국회 운영위 국감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두 명이 김씨와 사전 접촉했다"고 주장했다. 차 의원은 "두 의원 중 한 명은 변호사인 남편을 통해 김씨의 변호사를 만났고, 또 다른 한 의원은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 미국으로 보내 김씨 측과 접촉했다"고 말했다. 정두언 의원도 비슷한 의혹을 내놨다.

김씨가 이명박 후보에게 흠집을 내 결과적으로 여권의 재집권을 돕게 되면 혜택을 받을 것이란 논리로 설득했을 것이란 주장이다.

이에 대해 신당의 이낙연 대변인은 "구체적 근거가 있다면 대라"며 "이명박 후보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김씨가 빨리 들어오는 게 이익일 텐데 왜 그토록 김씨의 송환을 꺼림칙해하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라고 반박했다.

③ 엘리트의 모멸감=정치권엔 다른 견해도 있다. 김씨는 코넬대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나온 정통 엘리트다. 한때 '천재 펀드매니저'로 불렸다. 그런데 요즘엔 한나라당으로부터 '제2의 김대업'이라거나 '사기꾼'으로 불린다.

김씨가 자존심을 상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김씨의 변호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선 이전에 확실히 귀국해 여태까지 사기꾼으로 매도돼 온 본인(김씨)의 억울함을 풀 예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고정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