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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분쟁 해결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분쟁 解決士」는 지미 카터 前美國대통령이 「특허를 낸」외교街의 이색 직종이다.재선에 실패하고 81년 조지아州 고향으로 낙향한 카터는 재정적으로도 파산상태였다.
그의 땅콩농장은 3년연속 가뭄여파로 1백만달러의 빚더미에 올랐다.농장을 처분해 간신히 집은 건졌다.대통령연금(연9만9천5백달러)으로 생계는 꾸려간다지만 「백악관 이후의 삶」이 막막했다. 어느날 밤 그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분쟁해결이야,바로 그거야』라고 소리쳤다.부인 로절린여사는 『그가 失性한 줄로 알았다』며 『밤에 자다가 벌떡 일어난 것은 백악관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라고 회고했다.
애틀랜타의 카터센터는 86년 문을 열었다.그러나 82년부터 에머리대학내 임시본부에서 활동을 시작,센터 창설에 필요한 2천7백만달러를 18개월동안 모금했다.건물 4동에 직원이 1백30여명,「분쟁해결센터」에다 연구소,제3세계 지원을 위한 「글로벌2000」도 법인으로 두었다.
2천만달러에 달하는 연간예산은 공적.사적 기부에 의존한다.미국 굴지의 기업재단과 자선가,그리고 제3세계 프로그램은 주로 외국 정부및 은행.업계등 바깥에서 지원받는다.노르웨이정부.런던의 국제신용은행.日本조선협회가 그 알려진 면면이다 .
冷戰이후 작은「熱戰」들이 꼬리를 물면서「분쟁해결」은 날로 성업이다. 『오해나 비타협에 의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막는다』는 것이 창업구호다.
백악관및 국무부와 긴밀한 접촉을 갖지만 미국을 대변한 적은 한번도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재임시 미국이 가장 도덕적으로 떳떳했다며 자신에대한 「고객」들의 신뢰도 이 도덕성과 결부시킨다.
지난 6월 平壤방문으로「局面전환」에 기여한 그가 다시 北韓측의 부름을 받았다.미국 역시 의아하다는 반응이다.「조정」은 커녕 韓美간 이간을 노린다는 우리측 반발도 따갑다.
종족분쟁 조정차 라이베리아를 방문중인 카터가 장차 북한에 다시 갈 것인가에 대해 국무부의 한 대변인은 『그와 협의를 가질것』이라고 답했다.
협의 여하에 따라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다는 뜻인가.
갈수록 혼미를 더하는 韓.美.北韓간 三角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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