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민기자의가정만세] 행복한 결혼, 공부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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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직장동료 하나가 남동생 결혼을 앞두고 연일 속상해한다. 결혼 예물 때문이다. 예비신부가 수입 명품 브랜드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반지·귀걸이 3종 세트를 받고 싶어 한단다. 가격이 1000만원이 조금 못 되는 모양이다. 물론 ‘거저’ 받겠다는 심산은 아니다. 예비 시어머니에게 “(비슷한 가격대의) 악어백을 예단으로 드리겠다”고 말했단다. 물물교환이다.

“평범한 중산층인 부모님이 힘들게 번 돈을 왜 쓸데 없는 데 쓰는지 모르겠어요. 결혼 후 더 값지게 쓸 기회가 얼마든지 있을 텐데….” 직장동료의 푸념이다.

‘결혼 후’보다 ‘결혼 전’에 몰입하는 건 그의 동생 커플이 유별나서만은 아니다. 결혼을 둘러싼 우리의 논의는 대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쏠려 있다. 그것도 성격적으로 자신과 원만한 가정생활을 꾸려갈 가능성을 따져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신 물적 토대가 얼마나 굳건하느냐에 미래의 행복이 걸려 있다는 믿음은 이해할 수 없으리만치 굳건하다.

그러나 살아본 사람들이 숱하게 얘기하듯, 결혼은 지뢰밭이다. 지킬 박사와 결혼한 줄 알았는데, 배우자와 그 집안의 하이드씨 같은 부분을 뒤늦게 발견할 수도 있다. 아니, 발견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어지간한 각오와 신뢰 쌓기 없이는 지뢰가 터질 경우 결말은 공멸(이혼)이다.

요즘 중년들의 늦은 이혼이 화제다. 40∼50대 부부의 경우 17명 중 1명이 헤어진다(2005년 통계청 인구 센서스). 이혼 사유 1위도 외도나 가정불화에서 성격 차로 변했다. 성격 차로 헤어지는 부부가 많다는 건, 순간순간 생긴 감정 갈등을 제때 털어버리지 못하고 결혼생활을 좀먹도록 방치했던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 아닐까.

젊은이들은 오래 참지도 않는다. 나와 상대방의 차이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끝이다. 최근엔 갈라설 경우에 대비해 아예 혼인신고를 미루는 신혼도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이혼율이 OECD 회원국 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니, 이쯤 되면 이혼공화국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결혼 전, 특히 직전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붓는 풍조와 이혼공화국 사이에는 분명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 에너지를 가정경영법이나 배우자 관계 유지·보수법을 배우는 데 쏟았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대학을 가도 그런 과목은 없다. 십자수나 때 미는 법까지 가르치는 학원에도 그런 강의는 없다. 부부처세법을 가르치는 책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이를 진지하게 읽고 실천하는 부부는 그리 많지 않다. 대단히 인내심이 많거나 희생정신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전혀 교육받지 않은 내용에 대해 사회규범대로 행동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결과는? 배우자에게 결혼 전 내가 기대했던 대로 행동할 것만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가 성격 차를 거론하며 파경에 이른다. 실패는 어쩌면 출발 때부터 예정됐는지 모른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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