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혁시시각각

삼십 년간 이어져 온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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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번 칼럼에서 나는 대선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은 자식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자기 애는 외고 보내고, 조기 유학시키고, 미국식으로 가르치는 대안학교에 보내면서 남들에겐 “평준화를 깨면 절대 안 된다”고 외치는 위선을 너무 많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한번 따져 보자. 경제규모는 세계 11위고 사교육비는 세계 최고인 한국에서 세계 100위 안에 드는 대학이 몇 개나 있는가. 교육 이민이 속출하고, 교육 무서워 자식 안 낳는다는 말이 나온 게 언젠가. 그런데도 전혀 나아지는 게 없다. 왜? 위선 때문이다. 자식을 보다 좋은데 보내고, 더 나은 교육을 받게 하고픈 건 인간의 본성이다. 자기는 그런 본성에 매우 충실하면서 남들에겐 평등하라고 외치는, 그 끔찍한 위선. 누가 그러는지는 독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칼럼이 나가고 나서 전화와 메일을 적잖이 받았다. “정치인들에게 뭘 바라나. 그냥 기자들이 파헤쳐 보도해 달라”는 격려도 있었다. 하지만 비난도 많았다. “당신, 경기고·서울대 출신이지.” “물 좋은 강남에 사시나?” 하는 등이다. 미안하지만 전부 아니다. “정치적 목적이 있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없다. 지난번에 밝혔듯 나는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누가 대통령 돼도 좋다고 생각한다.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다.

그럼 왜 걸핏하면 교육을 물고 늘어지느냐고? 애들이 불쌍해서다. 새벽 1시쯤 귀가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파김치가 된 채 학원에서 돌아오는 어떤 집 아이한테 물어본다. “몇 학년이니?” “중 2요.”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게 치밀어 오른다. 아무리 봐도 이건 아동학대다. 도대체 낮에 학교에선 잠자고 야밤에 학원에서 전 과목을 다시 배우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어떤 분들은 “교육문제는 해결책이 없다”고 말한다. 실망이 반복돼 체념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나는 해법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극복해야 할 게 있다. 선거 때마다 악용되는 평준화 이데올로기다. 평준화는 대체 누굴 위한 제도인가. 아이들? 내가 보기엔 아니다. 평준화는 다음과 같은 분들을 위한 것이다.

첫째, 교육부. 평준화 정책의 미명하에 전국 초·중·고는 물론 대학까지 획일화하지 못해 안달이다. 한국 교육부처럼 막강한 조직은 전 세계에 없다. 둘째, 교사들이다. 일부 예외가 있겠지만 아이들을 학업 능력과 상관없이 마구 섞어 놓은 교실에서 교사들은 적당히 수업한다. 셋째 정치인들이다. 선거 때만 되면 “모든 아이가 평등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떠든다. ‘내 새끼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건 못 참는다’는 부모들의 심리를 최대한 자극해 표를 얻어낸다. 넷째, 학원이다. 학교 수업에 만족할 수 없는 아이들로 학원은 언제나 차고 넘친다. 학교 수업이 너무 쉬워 제 수준에 맞는 걸 배우겠다는 아이들로 넘치고, 수업이 너무 어려워 그걸 보충하려는 아이들로 넘친다. 이래 좋고 저래 좋다. 다섯째, 학부모들이다. 아이 입장에선 자기 수준에 맞는 반에서 배우는 게 좋겠지만 부모 자존심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우열반이 아니라 사실은 맞춤형 수업이고, 자기 수준에 안 맞는 수업 듣는 게 애한테는 고문인데도 그걸 용납 안 한다.

평준화는 지금까지 삼십 년 이상 이어져왔다. 이젠 거대한 이데올로기, 혹은 신화가 돼 버렸다. 일부에선 평준화 해제를 요구하면 가진 자들의 편이고, 약육강식을 좋아하고, 아이들을 차별하고, 비교육적인 것이라고 비난한다. 나는 그 반대를 본다. 평준화는 불평등한 교육이고, 어른들의 욕망을 위한 것이며, 붕어빵 인간을 만들어 내는 비교육의 전형이라고 본다. 과거에는 일부 긍정적 역할도 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21세기를 맞은 지금은 그렇다는 말이다. 삼십 년을 이어온 거짓말에서 이젠 벗어나야 한다. 위선의 행진을 여기서 끝내자.

김종혁 사회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