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우린 스무 살 … 옷도, 패션쇼도 기발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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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퀘어드2'의 쌍둥이 디자이너 딘<左>과 댄 카튼.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듯 고장난 엔진소리. “이러다 늦겠네…”하는 짜증 섞인 여자 목소리. 어두운 무대 위에 불이 켜지고 여자를 태운 고급 승용차가 자동차 정비소에 들어 왔다. 차에서 내린 그는 지난달 MTV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히트곡 ‘엄브렐라’로 비욘세를 누르고 ‘올해의 뮤직 비디오’와 ‘올해의 최고 히트 싱글’ 상을 거머쥔 리한나(19)였다. 검정 드레스를 입은 리한나는 가죽 작업복 차림의 정비공들을 노려보듯, 유혹하듯 천천히 돌아보다 무대 한가운데 섰다. 연극도, 뮤지컬도 아닌 패션쇼 무대였다. 음악의 비트가 점점 빨라지고 관객들의 환호가 시작됐다. 리한나가 런웨이로 성큼성큼 걸어 나오면서 내년 봄·여름용 ‘디스퀘어드2’의 여성복 밀라노 패션쇼가 시작됐다.

“옷보다 먼저 패션쇼 구상을 해요. 머릿속에 다음 패션쇼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어떤 장면, 어떤 주제를 그려낼까 결정되면 거기에 맞춰 옷을 디자인하죠.”

지난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패션쇼가 끝난 후 만난 쌍둥이 디자이너 딘과 댄 카튼(43)은 연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대답했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대로 적지 않은 나이에도 이들은 ‘젊은 패션’을 추구한다. 의상만 보여주는 여느 패션쇼와는 다른 무대를 선보여서일까. 카튼 형제의 패션은 젊은이들과 그들의 우상인 팝스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디스퀘어드2''의 2008 봄·여름 남성복 패션쇼.

카튼 형제는 2000년과 2001년 마돈나의 뮤직비디오 의상을 맡으며 유명해졌고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무대 의상도 디자인했다. 아길레라도 리한나처럼 그들의 패션쇼 무대에 모델로 섰다. 요즘도 이들의 옷은 로비 윌리엄스, 리키 마틴 등 팝스타들의 1순위 브랜드일 정도다.

이들의 옷이 팝스타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물었다. “우리가 젊잖아요. 우린 스무 살이거든요.” 다소 엉뚱한 대답이지만 이해가 됐다. 이들의 패션에는 엄숙함이나 점잔 빼는 겉치레보다 눈에 띄는 화려함이 우선이다. 이들이 만든 ‘디스퀘어드2’는 강렬한 원색으로 유명하다.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이들의 스니커즈는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 모두를 섞어 쓸 만큼 화려하다. 티셔츠나 청바지엔 오토바이족들이 선호하는 라벨을 많이 붙이기도 한다. 여성 의류는 깜찍한 실루엣의 짧은 치마나 앙증맞은 사이즈의 반바지가 많다. 사이즈는 되도록 몸에 꼭 맞게 한 것이 대부분.

이들이 생각하는 ‘젊은 멋쟁이’는 어떤 모습일까. “여잔 실루엣, 남잔 컬러예요. 보세요. 허리가 잘록하거나, 어깨가 봉긋하거나, 드레스가 옆으로 비틀어졌거나, 앞뒤 길이가 다르거나. 이런 게 실루엣이죠. 그런 걸 잘 선택해야 멋쟁이 여성이 돼요. 남잔 또 다르죠. 실루엣보다는 어떤 색을 조합해 입느냐를 최우선으로 살펴야 해요. 그래야 현대적이고 세련돼 보이거든요.”

“우린 스무 살이죠”를 연발하는 쌍둥이 디자이너는 옷만큼이나 패션쇼도 기발하다. 이들의 패션쇼는 늘 관객들의 놀라운 환호로 시작돼 왔다. 사실 카튼 형제의 이번 패션쇼는 얌전한 편이었다. 6월에 있었던 남성복 패션쇼는 무대를 자동차 경주장으로 꾸며 객석을 즐겁게 했다. ‘카트라이더’를 하듯 익살스러운 경주용 자동차는 무대 곳곳을 누볐고 모델들은 차 사이를 교묘하게 피해 다녀야만 했다. 2월에 열렸던 패션쇼도 충격이었다. 무대 전면을 커다란 철제 새장처럼 꾸민 쌍둥이 형제는 워킹을 마친 모델들을 새장 벽에 붙여 놓았다. 사설 격투장과도 같은 암울한 분위기였다. 쇼가 끝나자 디자이너들은 천장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들이 최근 패션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패션을 상징하는 도시 밀라노에 최근 플래그십 스토어(플래그십은 기함·모함이란 뜻으로 브랜드의 단독 매장을 일컫는 말)를 연 것이다. 자금과 세계적 마케팅을 내세운 명품 그룹의 플래그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명품 기업을 뒤에 업지 않고서는 개인 디자이너의 생존이 어려운 가운데 눈에 띄는 행보다.

“우리 매장은 마치 우리 아기 같아요. 15년이나 걸렸죠. 캐나다에서 나고 이탈리아에서 디자인을 하는 우리 정체성을 표현하는 곳이기도 해요.” 캐나다의 울창한 침엽수림을 연상하게끔 꾸며진 매장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밀라노=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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