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에서] 외국인 심판 앞에선 조용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걸핏하면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하고, 심지어 폭언까지 서슴지 않던 K-리그 선수들이 파란 눈의 포청천 앞에서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울산과 포항의 준플레이오프 주심은 독일에서 건너온 펠릭스 브리히(32)가 맡았다. 프로축구연맹은 최근 경기에서 사고가 잇따르자 2003년 10월 K-리그 4경기에서 주심으로 뛰었던 브리히를 급히 불러들였다. 국제축구연맹(FIFA) 국제심판이자 법학박사인 브리히는 칼날 같은 판정으로 그라운드를 완벽하게 통제했다.

그는 전반 12분 포항 김수연의 반칙에 옐로카드를 꺼냈고, 전반 15분 울산 현영민에게도 경고를 줘 초반 경기 과열을 막았다. 전반 44분, 포항 페널티 지역 안에서 슈팅 찬스를 잡았던 현영민이 골키퍼와 충돌하며 넘어졌다.

관중석에서 “페널티킥”이라며 고함과 야유가 터져나왔지만 브리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울산 선수와 코칭스태프도 한마디 항의 없이 넘어갔다.

울산이 1-2로 리드당한 후반 43분, 울산 마차도가 절호의 슈팅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주심은 마차도의 팔에 공이 맞았다며 반칙을 선언했다. 정확한 판정에 울산 선수들도 순순히 승복했다. 포항의 승리로 경기가 끝났고, 선수들과 심판들은 서로 악수를 교환하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도 외국인 주심이 맡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챔피언전도 독일 주심이 진행했다.

국내 심판들은 프로축구 최고를 가리는 ‘가을 축제’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외국인에게 휘슬을 넘겨주게 생겼다. 왜 선수들이 독일 심판한테는 꼼짝 못하는지, 왜 국내 심판을 신뢰하지 못하는지 스스로 돌이켜봐야 할 때다.

울산=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