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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오일쇼크가 오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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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19면

블룸버그 뉴스

미국 투자은행 골드먼삭스가 2년 전 흥미로운 예측을 내놓았다. 국제유가가 ‘대급등(Super-spike) 시대’에 돌입했다며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때 많은 전문가는 ‘참고할 만한 예측’이라고 평가했으나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얼마나 빨리 오르느냐’에 달렸다

그런데 지난주 국제 유가가 ‘마(魔)의 세 자리 숫자(100)’에 근접했다. 세계 유가를 가늠하는 미 서부텍사스중질유(WTI)의 12월 인도분 가격이 91.86달러로 지난 한 주 거래가 마감됐다. 올 1월 최저치보다 70% 이상 오른 것이다. 국내에서 주로 쓰는 두바이유도 82달러 선을 돌파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 이후 4년 만에 꼭 세 배로 올랐다. 지금 상황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엔 유가 100달러 시대가 열리리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사정이 이쯤 되자 최근 2년간 고유가에도 잠잠했던 ‘3차 오일쇼크’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름값 100달러 돌파→인플레이션 본격화→실물경제 침체’라는 음울한 시나리오에 많은 사람이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연 이 시나리오대로 될까.

자료:석유개발공사·OECD

전문가들은 현재 세계경제가 3차 오일쇼크에 시달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내다본다. 현재 기름값 급등 요인과 성격 등이 1·2차 오일쇼크 때와 다르기 때문이다.

1차 오일쇼크 때인 1973년 유가는 한 달 만에 5달러에서 12달러로 올랐다. 2차 쇼크 때는 8개월 만에 12달러에서 35달러로 뛰었다. 당시 원유 수입국의 에너지 효율성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이유로 원유 공급이 줄었고, 한번 오른 기름값은 상당 기간 유지돼 경제를 스태그플레이션 으로 밀어넣었다.

최근 유가는 네 가지 요인 때문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터키와 이라크 국경에 있는 쿠르드족 거주지역의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공급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감이 첫째다. 핵무기 개발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 간의 갈등도 정치적 리스크다.

수요 측면에선 겨울철을 앞두고 미국의 원유 재고가 줄어드는 가운데 중국과 인도의 ‘원유 빨아들이기’가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다 미 달러 가치 하락이 가세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요인을 대체적으로 일시적인 것이라고 보고 있다. 터키의 쿠르드족 소탕이나 이란·미국 핵무기 분쟁 등은 과거 이스라엘·아랍 전쟁이나 이란 이슬람혁명만큼 원유 공급을 오랜 기간 발목 잡을 것 같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산유국의 생산량은 상당히 안정적이다. 또 겨울철을 맞아 수요가 증가하는 것도 늘 이때쯤이면 발생하는 일이다.

이런 상황이 작용한 때문인지 최근 기름값은 많이 올랐으나 OECD 국가의 평균 인플레이션 수준은 상당히 안정적인 흐름을 보여준다. <그래프 참조> 과거 오일쇼크처럼 석유값 급등이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키고 있지는 않다.
또 유가 급등의 한 요인인 중국·인도의 석유 소비 증가를 보는 시각도 최

근 바뀌고 있다. 이 요인의 상당 부분이 올 상반기까지 국제 유가에 이미 반영됐는데, 원유시장 투기세력들이 핑계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유국들은 최근 유가 급등이 시장의 투기세력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일시적 요인을 활용해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 등이 일시적인 유가 급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어쨌든 유가 상승은 경제에 달갑잖은 일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기름값이 평균 10달러 오르면 OECD 국가들의 성장률이 2년간 0.4%포인트 하락한다고 분석했다. 이들 국가의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은 각각 0.5%포인트 상승한다. 지역별로는 유럽의 성장률이 0.5% 하락해 가장 타격이 크고 일본은 0.4%포인트, 미국은 0.3%포인트의 성장률 둔화를 겪게 된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 역시 성장률이 0.8%포인트 떨어지면서 물가는 그만큼 추가로 오를 것으로 예측됐다.

국내 경제는 얼마나 타격을 받을까. 한국은행은 국제 유가가 10% 오르면 국내총생산(GDP)이 3년간 0.2%포인트씩 하락하고 물가는 0.4%포인트 상승하며 경상수지가 19억 달러 악화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선진국보다 충격을 덜 받는다는 결론이다.

김윤기 대신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원자력발전소 등이 많이 지어져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낮고 산업구조가 고도화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느 정도 올라야 3차 오일쇼크가 발생할까.

IEA 등 분석기관들은 OECD 국가의 인플레 감안 ‘실질 기름값’이 1차 오일쇼크 때와 같아지는 수준을 배럴당 90∼95달러(2000년 기준 실질 유가로는 현재 80달러 선), GDP 대비 원유 소비 비중이 1차 쇼크 때(5.5%)와 같아지는 선을 120달러 안팎으로 각각 보고 있다. 이 정도는 돼야 3차 오일쇼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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