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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2만 명 시대 2% 부족한 관전 매너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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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16면

14일 경기도 용인 레이크사이드 골프장에서 열린 제23회 신한동해오픈 최종 라운드 17번 홀에서 최경주가 많은 갤러리와 함께 이동하고 있다. 최경주는 12언더파로 우승했다. [연합뉴스]

“휴대전화 끄세요. 한 사람의 인생이 걸려 있어요.”

숨막히는 샷 순간, 휴대전화 “따르릉” “여보세요”

정적이 흐르는 골프장. 날카로운 외마디가 터져나왔다. 메리츠 솔모로 오픈 골프대회가 열린 지난 9월 경기도 이천의 솔모로 CC. 아들의 경기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갤러리가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자 불만을 터뜨렸다.

지난해 9월 레이크사이드 서코스에서 열린 신한동해오픈 최종라운드. 최경주·마이클 캠벨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강경남은 강지만과 치열한 선두경쟁을 벌였다. 11번 홀(파5)에서 세컨드 샷을 준비하던 강경남은 갤러리들의 소음에 공을 치려다 말고 자세를 풀었다. 그러나 미스샷을 피할 수 없었다. 버디가 필요한 홀이었지만 파에 그쳤고, 다음 홀(파3)에서 어이없는 보기로 우승경쟁에서 밀려났다.

짐 퓨릭(미국)이 10번 홀 그린을 넘어 나무 옆으로 떨어진 세컨드샷을 그린 위에 올리기 위해 위치를 살펴보고 있다.

이처럼 갤러리의 무심한 행동 하나가 선수의 성적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갤러리들은 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기의 일부다. 더구나 최근 국내 골프 경기에는 갤러리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최경주·짐 퓨릭·강경남이 챔피언조에서 경기를 한 10월 14일 신한동해오픈 마지막 라운드는 2만4000여 명(주최 측 집계)의 대관중이 골프장을 찾았다. 입장 수입만 2억원을 넘었다.

LPGA 하나은행 코오롱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가 강풍으로 취소되자 갤러리들의 난동에 가까운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미국의 ESPN에 그 모습이 중계될까봐 걱정이라는 팬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갤러리 문화는 이제 스포츠계의 핫이슈 가운데 하나다. 대규모 갤러리는 주최 측에서 일일이 통제하기 어렵다. 그래서 더욱 세련된 관전 매너가 필요하다.

우리 갤러리들의 관전 매너는 아직 높은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신한동해오픈에서 퓨릭은 어린애의 울음소리, 카메라 셔터 소리, 갤러리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자주 짜증을 냈다. 최경주도 라운드가 끝난 뒤 완곡하게 유감을 나타냈다.

‘세련된 관전 매너’는 무엇인가. 복잡하지 않다. 지킬 것을 지키고 해선 안 될 행동을 삼가면 된다. 정리해 보자.

첫째, 휴대전화. 골프 팬들은 선수가 경기할 때 휴대전화를 꺼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지키지 못한다. 휴대전화를 끼고 사는 우리네 습관 탓일까. 외국의 일부 대회는 갤러리의 휴대전화를 맡아뒀다가 경기가 끝난 뒤 돌려준다. 국내에서 이 제도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갤러리로 골프장을 찾았다면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바꾸자. 특히 그린 주변에서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선수들이 샷이나 퍼트를 할 때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된다. 준비단계에서부터 동작을 멈추자. 국내 대회에서는 선수가 드라이브샷을 하려고 할 때 홀 쪽으로 걸어가는 갤러리가 적잖다. 거리가 멀다 보니 캐디들이 “그 자리에 서주세요”라고 몇 차례 외친 다음에야 걸음을 멈추는 경우가 빈번하다. 카트가 다니는 길로 이동할 때는 반드시 티박스를 응시하고 샷 동작에 들어가면 움직임을 멈춰야 한다.

셋째, 샷을 하는 선수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티박스에서 드라이버를 칠 때 백스윙하는 일직선상의 뒤쪽이나 퍼팅할 때 공과 홀의 직선라인에서는 가능한 한 비켜서야 한다. 티박스에 설치한 광고판 뒤에서 관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도 선수가 백스윙하는 일직선상에서는 비켜서 있어야 한다.

넷째, 드라이브샷한 공이 떨어지는 지점에 서 있을 때 선수가 친 공에 맞지 않도록 주의하자. 공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올 시즌 코리안 투어에서 OB가 난 공을 갤러리가 페어웨이 쪽으로 던져넣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잡혀 논란이 됐다. 김경태의 공을 갤러리가 발로 차는 바람에 깊은 러프에 들어가 불이익을 당한 일도 있다.

다섯째, 세 명의 선수가 티샷 후 페어웨이 쪽으로 이동할 때 선수와 캐디가 우선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티샷이 끝나면 항상 갤러리가 먼저 움직이는 바람에 진행요원들이 어렵게 길을 열곤 한다.

사실 이런 관전 매너는 골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갤러리라면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어렵지 않다. 그러나 상식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태도가 문제다. 심지어 경기 도중에 사인을 요청하는 갤러리도 있다. 사인은 선수가 경기를 끝내고 스코어 카드를 제출한 다음에 요청해도 늦지 않다.

골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한 선수의 볼이 러프나 숲 속으로 사라졌을 때 그 공을 나머지 플레이어들과 캐디들이 함께 찾는 모습이다. 그 장면 속에 남에 대한 배려가 깃들어 있다. 골프에서의 배려는 비단 선수와 선수, 경기에 관련된 사람들만의 몫은 아니다. 갤러리도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선수는 한 순간의 샷을 위해 수십만 개의 연습 공을 치고 경기장에 나선다. 그들이 무아지경에서 날리는 샷 하나하나에는 선수의 피눈물과 미래가 걸려 있다. 나의 무심한 휴대전화 벨소리와 작은 움직임에 한 젊은 유망주의 운명이 좌우된다면 당연히 갤러리도 긴장하고 실수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족. 대회 주최 측이나 골프장에서도 갤러리들에 대한 서비스에 힘써야 한다. 대부분의 골프장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멀리서 찾아온 갤러리를 잘 모셔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최근 최경주나 짐 퓨릭, 비제이 싱이 내한했을 때 있었던 경호원들의 과잉 경호도 지적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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