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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최말단 책임자들 부른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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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이 26일 4.25 문화회관에서 1994년 3월 이후 13년 만에 전국 당세포 비서 대회를 열었다. [조선중앙TV 촬영]

북한이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 취임 이후 최초로 대규모 당 행사를 열어 관심을 끈다. 특히 11월 1일 영변 핵시설 불능화 조치가 시작되면 곧바로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가 이뤄지는 등 북.미 관계 개선이 급물살을 타는 시점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경제난 해결을 위한 개방에 대비하는 일종의 정책 전환 신호탄이란 관측마저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북한학) 교수는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끊임없이 미국 타도를 강조해 왔다"며 "주민들이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북.미 관계 정상화 시대를 맞게 되면 혼란을 겪을 수 있어 이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사상 결속을 강화하고 이완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994년 열린 1차 당세포비서대회 당시도 북.미 관계는 급반전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와 핵사찰 문제로 한반도에 전쟁 분위기가 고조됐으나 당세포 대회 이후 지미 카터 대통령 방북(6월), 남북 정상회담 합의(7월 25일.김일성 주석 사망으로 무산) 등 한반도 정세가 한순간에 반전됐다. 지난해 10월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위기 고조 이후 최근 조성되고 있는 평화 무드도 같은 형국이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불능화를 마무리하고 핵시설 신고를 마치면 미국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제외하고 경제 봉쇄도 해제할 것을 약속한 상황이다.

이 같은 북.미 관계 개선이 북한의 개방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현재의 중국.베트남과 같은 전면적 개방은 아니더라도 이들 국가의 초기 개방의 길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북.미 관계 개선이 북한 경제난 극복에 필수적인 국제사회의 대북 투자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영구 현대사연구소 이사장은 "중국식 개방, 베트남식 개방에 이어 북한식 개방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1월 중국 경제특구를 방문한 데 이어 베트남 공산당 총비서 방북, 김영일 내각총리 베트남 방문 등 개방한 사회주의국가들과 경제 교류 행보가 빨라졌다"며 "서방과 교류 확대를 앞두고 주민들의 사상교양을 강화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는 달리 북한이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느슨해진 당 조직을 재건하는 체제 정비 차원이거나 자본주의 요소를 일부 도입한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생겨난 체제 위협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최근 평양을 중심으로 고난의 행군 이후 크게 느슨해진 당 조직이 복원되기는 했으나 지방당 조직은 여전이 이완된 모습이어서 이를 다잡을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신문이 "이번 대회를 계기로 일대 혁명적 사상 공세를 벌여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경제난에서 어느 정도 회복하자 시스템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 신의주를 비롯해 국경 지역에서 개인 장사를 금지하고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94년 1차 당세포비서대회에 참석했던 한 탈북자는 "당세포비서대회의 기본 목적은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 세우고 자본주의에 물드는 것을 방지하고 북한 체제에 긍정적인 모범 사례들을 사회에 널리 알려 일반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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