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과징금 때려놓고 로펌 취업해선 깎아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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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는 사상 최대에 이른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와 퇴직 간부의 로펌 취업이 도마에 올랐다. 기업에 과징금을 때려 놓고, 다른 한편으론 이를 깎아 달라는 사건을 수임한 로펌에 공정위 퇴직자가 대거 취업하는 게 정당하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더욱이 과징금 부과 후 제기된 소송에서 공정위의 패소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과징금 부과가 퇴직 후 공정위 직원의 로펌 행을 위한 '길 닦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로펌 행 퇴직 간부는 로비 창구?=박상돈(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2003년 이후 공정위에서 퇴직한 4급 이상 직원 33명 중 25명이 로펌이나 대기업에 취업했다"고 말했다. 이들 중 퇴직 후 2년 안에 재취업한 사람이 94%인 31명이었고 23명은 한 달 안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의원은 "공정위가 무리하게 과징금을 때려 놓고 이를 깎으려는 로펌이나 대기업에 퇴직 간부의 취업은 방관했다"며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가 퇴직 직원의 자리를 만들기로 이용되는 건 아니냐"고 따졌다.

특히 2005~2006년 공정위를 퇴직하고 취업한 4급 이상 간부 22명 중 절반인 11명이 로펌에 들어갔다. 이 중에는 부위원장 2명과 상임위원 3명, 사무처장 1명도 포함됐다. 이들이 소속된 로펌은 공정위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율이 공정위 출신 공무원을 뽑지 않은 로펌보다 높았다. 심지어 공정위 출신이 없는 로펌 세 곳의 승소율은 0%에 그치기도 했다.

한 로펌 관계자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데 직접 관여해 본 사람이 아무래도 과징금을 깎을 수 있는 허점이나 대응논리에 밝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과 몇 달 전까지 함께 근무했던 공정위 동료이자 선배가 소송에 관여하면 팔이 안으로 굽는 건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신문시장 불공정행위에 대한 과징금이 중앙.조선.동아 등 현 정권에 비판적인 신문에만 집중된 점도 의원들의 지적을 받았다. 김정훈(한나라당) 의원은 "2004년부터 올 9월까지 부과된 과징금(17억4730만원) 가운데 94%가 3개사에 몰렸다"고 추궁했다.

◆사상 최대 과징금에 패소율은 껑충=공정위가 9월 말까지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은 3328억원. 9월까지 적발한 불공정 거래행위도 279건으로 종전 최고 기록인 2005년의 274건보다 5건 많았다. 올해는 특히 대기업의 담합 행위(카르텔)가 표적이 됐다. 연초 SK.GS칼텍스 같은 정유사 담합 건을 시작으로 유화.설탕업계 담합이 공정위로부터 된서리를 맞았다. 공정위는 카르텔에만 30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과징금 부과 후 이어진 소송에서 공정위의 패소율(일부 승소 제외)은 2004년 12.8%에서 지난해 22.9%로 높아졌다. 김양수(한나라당) 의원은 "공정위가 최근 4년 6개월 동안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소송이나 이의신청으로 돌려준 액수가 1430억원이었고 이자만 316억원을 물어줬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리하게 과징금을 부과해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나중에 이자를 붙여 돌려주느라 정부 예산을 축내는 건 문제"라고 주장했다.

손해용 기자

▒알려왔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체 소송 가운데 과징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담합 관련 소송의 완전승소율은 76.7%에 이른다"고 알려왔습니다. 공정위는 "2000년 이후 확정판결이 나온 담합 관련 소송 43건 중 전부 승소는 33건이며, 전부 패소는 2건(4.7%)에 불과하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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