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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기획·탐사기사 공모전 당선작 ③ 호주 워킹홀리데이, 돈벌이영어 모두 놓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2호 24면

“너 휴학하고 뭐 하려고?”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가려고 생각 중이야.”

대학생들 사이에 호주 워킹홀리데이(이하 워홀) 열풍이 불고 있다. 워홀은 일하면서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것을 말한다. 한국은 호주·캐나다·뉴질랜드·일본과 워홀 비자협정을 맺고 있다. 그중에서도 영어권인 데다 수시로 비자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호주행 희망자가 많다. 2005년 6월부터 1년 동안 호주 워홀비자를 손에 쥔 한국인은 2만5000여 명.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32.9% 증가했다.

워홀비자로 호주에서 생활하는 대학생들(이하 워홀러)은 어떻게 지낼까?

워홀러가 브리즈번의 한국식품마켓 게시판에 붙어 있는 구인광고를 살펴보고 있다. 구인광고에는 급여, 근무시간, 연락처 등이 적혀 있다. 구인광고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 자리, 하숙, 세일 등 다양한 생활정보가 게시판에 붙는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벌이

관동대 영문과 윤철현(24)씨. 그는 2학년을 마친 뒤 휴학하고 지난 3월 호주행 비행기를 탔다. 현재 브리즈번 한인 세차장에서 일하면서 한 달에 140만원을 벌고 있다. 방값과 생활비를 제외하면 30만원 정도 남는다. 윤씨는 “영어 공부가 첫 번째 목적이었으나 지금은 돈 버는 일에 더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인과 함께 일하며 돈도 벌고 영어 실력도 높이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영어 실력이 달리는 데다 고용주는 체류기간이 불안정한 워홀러를 선호하지 않는다.

한인 PC방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문대섭(26·경희대 전자과)씨는 “한인 고용주 밑에서 시간당 10호주 달러(약 7000원) 이상 받는 워홀러는 거의 없다”고 잘라 말한다. 퀸즐랜드주의 경우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12.59달러다. 문씨는 “5달러를 받고도 일하려고 하는 학생이 줄을 서 있어요. 임금에 불만이 있으면 그만둬야 합니다. 임금 인상은 기대하지 못합니다”고 말했다.

호주 지상파 방송 채널7의 시사프로그램 ‘투데이 투나잇’은 6월 외국인의 불법 근로와 저임금 실상을 고발했다. 한인 청소용역업체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지급하면서 한인 학생을 고용하고 있는 내용도 포함됐다. 방영 이후 규모가 큰 한인업체를 대상으로 세무조사가 실시됐다. 브리즈번 워홀러들의 정보 사이트인 ‘선브리즈번 닷컴(www.sunbrisbane.com)’을 운영 중인 제임스 킴(32)은 “그러나 고용인이 한두 명인 소규모 사업장에는 보도의 파장이 전혀 미치지 않는다. 워홀러들의 노동조건이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말 사용해 영어실력 제자리

4월 브리즈번에 도착한 김현준(25·인천대 무역학과)씨. 그는 영어 공부를 중단한 채 한인 PC방에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 김씨는 “어학원에 등록한 워홀러는 여유를 갖는 것이 아니라 나태해집니다. 워홀이니까 슬슬 공부해도 괜찮다고 합리화합니다”고 지적했다. 영어를 공부할 생각이었다면 학생비자로 왔어야 했다는 설명이다. 학생비자는 출석률을 80% 이상 유지하지 못할 경우 강제 추방되지만 워홀비자는 출석률 강제조항이 없는데 이것이 오히려 생활을 느슨하게 한다는 것이다.

윤철현씨는 “알고 있는 영어도 한인 고용주와 일하면서 사용할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손님과 나누는 영어 대화도 같은 말의 반복이어서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국인 학생들의 폐쇄성도 영어 공부에 장애물이다. 제임스 킴은 “수업만 마치면 한인 학생들끼리 모여 한국 TV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보는 게 일”이라고 비판했다.

취재팀이 워홀비자 관련 동호회 ‘호주완전정복’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목적이 영어’라고 대답한 사람이 응답자 187명 중 70%인 131명이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영어 공부는 이처럼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카지노에서 생활비 날리기도

브리즈번의 트레저리(TREASURY) 카지노. 이곳에 하루 20~30명의 한인 학생들이 드나든다. 김진영(24·가명)씨는 워홀 생활 초기, 일주일에 4~5번 카지노를 찾았다. 결국 400만원을 잃은 뒤에야 카지노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 김씨는 “워홀 생활을 하려면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매달 학비 100만원, 방값 50만~60만원에 생활비가 적어도 50만원은 듭니다. 일을 해서 벌 수 있는 것은 50만~60만원에 불과합니다”고 말했다. 열악한 근로환경 때문에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카지노에 빠지기 쉽다는 설명이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돈을 카지노에서 다 잃고 일주일 만에 귀국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워홀 1세대이자 워홀가이드북 카페 운영자인 이동규(30)씨는 “원래의 목적에 충실하고 성공담을 과신하지 마라”고 충고한다. 경험자들이 만든 환상이 실상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주시드니 한국 총영사관 한국교육원 박인순 원장은 “호주에 오기만 하면 영어가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워홀비자를 통한 어학연수 성공률은 10%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배운 영어를 써먹는 기회이지, 실력이 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충고다.

주호주 대사관 채승희 부영사는 “워킹홀리데이에서 ‘워킹’을 너무 크게 봐요. 우리가 봐야 할 부분은 ‘홀리데이’입니다. 워킹은 홀리데이를 위한 보조로 봐야 하는 거죠. 여행이나 문화체험을 통해 인생에 큰 영감을 받고 발전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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