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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어쩌면 맨밥 한 술 같은 담담한 ‘노년의 향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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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문학과지성사
302쪽, 9500원

박완서 소설을 읽는 건 동란의 아픔을 되새기는 일이다. 아니 1970년대 저 연탄불의 시절을 아련히 추억하는 것이며, 아침 출근길 시내버스에 겨우 오른 어르신의 위태로운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이다. 아니다, 모두 아니다. 박완서 소설을 읽는 건 고향의 어머니를 뵈러 가는 길이다.

오늘 다시 박완서의 소설을 읽는다. 여기서 현재형을 고수하는 건 중요하다. 박완서를 읽는 건, 이제는 전설이 된 옛 대가를 다시 꺼내드는 차원이 아니어서다. 박완서를 읽는 건, 일흔여섯 살 현역작가의 작품을 읽는 일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1세기 가장 많이 읽힌 한국작가는 단연 박완서다. 그의 작품, 예컨대 『아주 오래된 농담』『그 남자네 집』『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등의 장편소설 5종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모두 일곱 차례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오늘 읽는 박완서 소설은 그가 9년 만에 엮은 단편집이다. 2001년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단편 ‘그리움을 위하여’를 비롯해 모두 9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편편이 예의 그 박완서의 ‘자식’이다. “소설과 일상적 삶이 구분되지 않는 것(평론가 김윤식)”을 박완서 문학의 본령으로 알고 있기에 그러하다. 소소한 일상에서 건져낸 오늘, 우리가 사는 꼴이 이번에도 특유의 입담과 수다에 얹혀져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세상을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은, 섬세하다기보다 예리하다.

# 노년의 삶, 노년의 문학

70대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소설의 소재를 찾아낸다. 그렇다 보니 소설은 자연스레 노인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이를 테면 다음의 구절은 당대 한국문학에서 박완서만이 구사할 수 있는 문장이다.

‘노인들이 춥지도 덥지도 않을 때 죽기를 소망하는 것도 봄가을이라고 죽기가 덜 서럽거나 덜 힘들어서 그러겠는가, 다 자식들을 생각해서지(10쪽).’

‘요새 젊은이들은 제 자식 백일이나 돌잔치까지 호텔이나 이름난 요릿집에서 하지만 나는 그 꼴 못 봐준다(11쪽).’

‘요렇게 싸가지 없는 며늘년을 내가 아무리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시어미라 해도 어떻게 안 싫어하겠는가(245쪽).’

‘관절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높은 구두를 신으면 고소공포증을 느낀다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는 다들 그렇게 한심한 나이였다(270쪽).’

이번 소설집에서 두드러지는 건, 노년의 자잘한 일상이다. 황혼녘에 걸터앉아 소싯적을 회고하는 장면도 종종 보이지만 소설 속 인물이 겪는 갈등의 대부분은 지금 여기의 삶에 모여있다. 그들의 주변엔 눈 똑바로 뜨고 말하는 며느리가 있고(‘촛불 밝힌 식탁’), 환갑 진갑 다 받아먹고 덜컥 재가해버린 사촌여동생이 있으며(‘그리움을 위하여’), 중풍에 걸려 오른쪽 반신이 흐느적대면서도 약국에서 비아그라를 사려는 남편이 있다(‘친절한 복희씨’). 소설은, 이들과 부대끼는 노년의 하루하루를 무연히 재현한다.

50년 전 첫사랑이 살았던 집을 찾아가는 얘기인 ‘그 남자네 집’의 마지막 단락을 옮긴다. 젊은이 우글대는 카페에 들어선 할머니의 속엣말이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나는 젊은이들한테 삐치려는 마음을 겨우 이렇게 다독거렸다(78쪽).’

# 맨밥 맛의 소설

밥은, 박완서 소설을 감싸안는 일종의 정서다. 이번 책에도 솔솔, 밥 냄새가 풍긴다. 그건, 박완서 소설이 늘 가족을 말하고 있어서다. 가족은 식구고, 식구는 함께 밥을 먹는 사이다.

‘촛불 밝힌 식탁’을 보자. 부모와 아들 내외는 한 아파트 단지 내 서로 불빛을 확인할 수 거리 안에 산다. 아들네 집에 불이 환하면 어머니는 연방 청국장 따위를 나른다. 반대로 불이 꺼져 있으면 사람이 출타했다는 표시다. 그러던 어느 저녁, 아들네 집에서 모닥불의 잔광 같은 희미한 빛을 아버지는 느낀다. 아들네는 전깃불 대신 촛불 아래서 그들만의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이 말고도 밥은, 나아가 밥을 짓고 밥상을 들이고 숟가락을 뜨는 일은, 책에 수록된 모든 작품에서 발견된다. 밥과 관련한 몇몇 표현을 열거한다.

‘식모라는 직업이 사라진 후 나는 파출부 따라 식성까지 바뀌는 생활을 해왔다(15쪽).’

‘우리가 받은 고통은 김치하고 밥처럼 평균치의 밥상이었으니까(66쪽).’

‘내 결혼 생활은 연탄불과의 투쟁의 역사(75쪽).’

하나 밥의 정서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건 역시 ‘후남아, 밥 먹어라’다. 미국으로 시집갔던 셋째 딸이 오랜만에 들어와 보니 엄마는 치매에 걸려있다. 정신을 놓고 산 엄마는 그러나 딸을 보자마자 악을 쓴다. “후남아, 밥 먹어라.” 엄마는 옛날에 꼭 이렇게 딸을 불렀다. 입만 터진 게 아니었다. 엄마는 안 쓰던 무쇠솥도 깨끗이 가셔 맨밥을 지었다. 밥 뜸 드는 냄새를 맡고서야 딸의 뒤집혔던 비위가 가라앉는다. 밥의 힘, 밥심의 덕분이다.

박완서 소설을 읽는 건, 어쩌면 맨밥 한 술 푹 뜨는 일이다. 이른 새벽 식구들 몰래 일어난 어머니가 지은, 김 가시지 말라고 고이 뚜껑 덮어놓은, 덤덤한 맛의 그 밥 말이다.

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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