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무원 왕국의 참담한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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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정감사에서 드러나고 있는 공공 부문의 비리를 보노라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공기업에 이르기까지 공(公)자가 붙은 곳곳이 썩었다. 국민 세금으로 흥청망청 돈 잔치를 벌이고 있으니 어쩌다 나라 꼴이 이 지경이 됐는가.

퇴직을 앞둔 지자체 공무원 4038명은 ‘공로 연수’라는 명목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상당수는 부부 동반이었고, 112억원의 세금이 들어갔다. 근로복지공단 임원은 업무추진비로 평일 골프를 즐겼다. 산업자원부와 28개 산하기관 직원이 부정행위로 징계받은 건수가 1200건을 넘었다. 횡령·폭행·사기·뺑소니·대마초 흡입·성희롱이 망라돼 있어 국민의 공복인지, 범죄 집단인지 헷갈릴 정도다.

기획예산처가 주관하는 산하기관 경영 평가도 엉망진창이다. 한국정보사회진흥원은 3년간 허위 경영보고서를 제출해 경영 평가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도 KOTRA가 자료를 조작해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1위에 올랐다. 이런 엉터리 경영 평가를 토대로 성과급이 나가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5년 동안 공들여 만든 공무원 왕국의 현주소다. 이 정부는 공무원을 6만 명 이상 늘렸다. 공기업 민영화 계획도 줄줄이 백지화하고, 외려 28개의 공기업을 신설했다. 그곳을 코드 인사로 채우고는 ‘낙하산이 아니라 시스템 인사’라고 우겼다.

이 정부는 늘 약자의 편,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강조해 왔다. 심지어 20% ‘있는 자’의 약탈로부터 나머지 80%를 보호하겠다며 국민을 편가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80%의 국민이 아니라 공공 부문만 살찌운 셈이 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 주자들은 이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차기 정부는 정권 초기 1~2년 안에 공공 부문 개혁을 마친다는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불요불급한 공무원과 조직을 확 줄이고, 공기업도 과감히 민영화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무원 왕국을 만드는 데 일조한 사람들에게 엄중히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게 이런 시행착오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는 길이다.

▒바로잡습니다▒

국정감사 자료를 인용해 '근로복지공단 임원은 업무추진비로 평일 골프를 했다'고 썼습니다. 이에 대해 공단 측은 "골프 비용이 아니라 사회공헌활동 워크숍을 하고 식대와 숙박비 등을 결제한 것"이라며 "워크숍 장소였던 용인 한화리조트의 업종이 골프장으로 돼 있어 오인한 것 같다"고 알려왔기에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