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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3人이 본 '태극기휘날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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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리'의 강제규(42) 감독이 4년 만에 내놓는 작품. 2백억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제작비. 이런 이유들 때문에 기념비적인 한국영화가 되리라는 기대를 모았던 '태극기 휘날리며'(이하 '태극기')가 마침내 지난 3일 제막식을 개최했다.

관객 1천만명을 향해 파죽지세로 달리고 있는 '실미도'의 뒤를 잇는다는 점에서도 '태극기'에 쏠리는 눈길은 예사로울 수가 없었다. 강감독이 '태극기'에서 취한 전략은 '쉬리'의 확대 복사판. '쉬리'에서 남북 분단 상황을 밑그림으로 삼았던 그는 '태극기'에서는 분단 고착화의 원죄라 할 수 있는 한국전쟁으로 시간을 돌렸다.

'쉬리'에서 할리우드식 액션을 본격적으로 도입해 '유사(類似) 할리우드 영화'라는 평을 받았던 그는 '태극기'에서는 아예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시사회의 반응도 '쉬리'때와 흡사하다. "할리우드 영화 뺨치는 볼거리를 가졌지만 우연과 작위성이 잦아 이야기 전개에 허점이 많다. 하지만 '쉬리'가 세웠던 전국 관객 6백만명 기록은 충분히 깰 것 같다"는 게 중평이었다.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1950년 6월 우애가 깊었던 구두닦이 형과 모범생 아우가 전쟁을 피해 피란길에 나섰다가 함께 징집된다. 동생을 빨리 제대시키기 위해서는 전쟁 영웅이 돼야 한다고 믿은 형은 점점 전쟁광으로 변해가고, 심약한 아우는 형의 이해되지 않는 모습에 분노만 키우게 된다. '태극기'는 과연 모두의 희망처럼 한국영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인가. 영화평론가 김경욱.김영진.남재일씨를 통해 들어봤다.

*** 짠한 형제애 눈물샘 자극

김영진=196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전쟁 영화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70, 80년대는 반공(反共) 정신이 우리 사회를 지배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전쟁영화가 탄생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제 정치적.이념적으로 자유로워지면서 이런 굴레를 벗어나게 됐다. 오랜만에 나온 전쟁영화라 '태극기'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로 눈높이가 높아진 관객들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더라.

김경욱=영화의 소재 자체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것들이다. 한국 전쟁 발발부터 낙동강 후퇴, 서울 수복, 북진 공격 등. 영화 '태극기'가 특별히 새롭게 밝혀낸 사실도 없다. 그러니 도시와 산악을 오가고 계절을 바꿔가면서 마치 버라이어티쇼처럼 전쟁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았나 싶다.

남재일=시사회 때 보니까 전쟁을 모르는 20대 관객들이 많이 훌쩍거리더라.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형제를 잃고, 약혼녀를 잃는다. 이처럼 가족 구성원을 상실하는 '상처'는 현대사를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도 깊게 남아 있다. 또 장동건이 연기한 형의 캐릭터에는 한국인들이 집안의 '형'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서적 의미가 배어난다.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家長) 역할을 맡고 자신을 희생하는 유형의 형이 많았다. '태극기'가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관객에게 어필한다면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다.

김영진=강 감독은 영화를 '때깔'나게 만드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 흥행이 될 만한 요소는 충분히 갖춘 것 같다. 말을 못하는 어머니가 울먹이며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아들을 맞아준다든지, 전장에서 만난 두 형제가 부둥켜 안고 울부짖는 등 관객의 감정선을 자극하는 장면들이 마치 융단폭격처럼 관객을 압도한다. 희생과 그리움이라는 인간의 본원적인 감성에 기대는, 전형적인 대중 상업영화다. 관객의 감정 흐름을 너무 계산한 흔적마저 보여 '영리한 기성품' 같다는 생각도 했다.

김경욱=이야기 자체는 좀 유치한 편이다. 멜러적인 감정의 전달에 치우친 게 아닐까. 감독은 영화를 끌어가는 이음새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 것 같다.

*** 전투 장면 클로즈업 남발

남재일=전투 장면에서 클로즈업이 남발됐다. 잔인한 살육 장면을 확대해서 세밀하게 보여 주려는 의도 같았다. 하지만 전체와 부분을 적절히 안배해서 보여주었더라면 전쟁의 흐름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지 않았을까.

김영진=맞다. 과도하다고 할 만큼 전투 장면이 많지만 그 속에서 드라마를 끌어가는 데 힘이 부친 듯 보였다. 두 형제, 즉 장동건과 원빈만 보여주다 보니까 주변인물들이 제대로 살지 못한 점도 안타깝다. 예를 들어 공형진의 너스레 떠는 연기도 좋았는데, 카메라는 두 주인공에게만 쏠렸다.

김경욱=정치인의 비리, 가족 동반 자살 등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사회에 우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이런 여건에서는 사람들이 가족이야말로 자신들이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여기게 된다. 형제애.가족애를 다룬 이야기에 많은 관객이 호응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정리=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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