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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대안

신당 ‘모바일 정치실험’ 타당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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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이 15일 막을 내렸다. 신당은 이번 경선에서 몇 가지 정치실험을 했다. 우선 정당 사상 최초로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를 도입했다. 100%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 후보를 뽑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결과는 흥행 참패였다. 16개 지역 경선의 평균 투표율은 16.2%에 불과했다. 인구비례와 상관없이 선거인단을 모집하며 조직·동원 선거 논란도 불거졌다. 하지만 경선 막판의 ‘모바일 바람’이 꺼져가던 흥행 불씨를 되살렸다. 세계 최초로 실시된 모바일(휴대전화) 선거의 투표율은 75%에 달했다. 이를 놓고 젊은층 참여를 유도해 민주주의의 새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와 직접·비밀선거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동시에 나왔다. 오픈 프라이머리·모바일 투표 등 신당의 정치실험을 놓고 당사자인 정계와 학계 인사들이 16일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강치원(사회)=신당이 도입한 국민경선이 많은 논란을 불렀다.

▶지병문=선거인단 등록을 하지 않고도 원하는 국민이면 누구나 투표할 수 있는 게 미국식 오픈 프라이머리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행법은 이를 금지한다. 그래서 선거인단 등록을 받아 제한된 국민경선을 치렀다. 그러다 보니 각 후보 측의 선거인단 모집 경쟁이 불붙었고, 조직·동원 문제가 발생했다.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몇 가지 한계가 있었다.

▶박형준=신당 후보들의 지지율이 낮으니까 경선 흥행을 위해 너무 욕심을 낸 것 같다. 그래서 부실한 관리가 드러났고 여러 가지 비리가 터졌다. 수백만 명의 국민을 참여시켜 흥행 효과를 내려고 했지만 투표율이 낮아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 경선은 숫자를 제한하고 인구비례에 따라 선거인단을 구성했다. 신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선 관리가 잘된 이유다.

▶이준한=각 후보 측이 서로 유리한 규칙을 만들고자 경선 시작 전부터 다투고, 심지어 경선 도중에 규칙을 고치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됐다. 어떤 후보는 마음에 안 든다고 중간에 뛰쳐나가기도 했다. 경선 과정 자체가 급조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사회=경선 도중에 경선 룰을 고쳤고 투표율이 저조하다는 비판이 있다.

▶지병문=도중에 바꾼 게 아니라 경선 룰을 만들어가며 경선을 치른 거다. 투표율이 낮다고 해서 실패라고 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 모바일 투표까지 포함하면 이번 경선에 45만 명이 투표했다. 우리 역사에서 45만 명이 정당 후보자를 선출한 경선이 있었나. 사실상 선거인단의 90% 이상이 일반 국민이다. 미국도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면 투표율이 5~10%대가 많다. 한나라당 경선 투표율(70%)과 비교해 실패라고 하는데, 한나라당은 선거인단 대부분이 당원이었다. 신당의 경우 90%가 일반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실제 투표장에 나온 건 적은 숫자가 아니다.

▶박형준=경선을 날림으로 만들어 부실 공사한 걸 자인하는 것 같다. 사실 한나라당 경선에서 숫자를 제한하지 않았으면 수백만 명의 국민이 참여했을 거다. 오히려 인구비례에 따라 숫자를 제한한 건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한 부분이다. 경선 참여가 45만 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기대했던 수백만 명엔 훨씬 못 미쳤다. 상당한 동원이 이뤄졌는데도 투표율이 15%밖에 안 됐다.

▶지병문=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제를 넘어서고 2002년 민주당 경선과 같은 제한된 국민경선도 넘어서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게 국민에게 완전 문을 열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선거인단 모집이라는 또 하나의 벽이 있었던 것 같다. 현재처럼 선거인단 모집을 통한 경선으로 제한하면 어떤 당이 하더라도 조직·동원 시비가 생긴다. 다음 국회에선 관련 법을 고쳐야 한다.

▶사회=세계 최초로 도입된 모바일 투표는 상당한 흥행을 거뒀다. 하지만 대리투표·공개투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박형준=모바일 투표는 흥미로운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기술적·법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비밀투표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다. 사실상 ARS(자동응답) 전화로 투표를 하면 결과를 아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 그 정보가 데이터베이스로 남기 때문이다. 특히 정당 선거를 넘어 공직자 선거에서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는 문제는 시기상조다. 그러려면 위헌 문제부터 해소돼야 한다. 공개투표나 대리투표 문제를 말끔하게 해소해야 일반 선거에 도입될 수 있을 것이다.

▶지병문=막상 모바일 투표를 실시해 보니 지역 경선에 비해 투표율(75%)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선거 때마다 골칫거리인 투표율 저조 현상이 극복된 거다. 또 이번 모바일 선거인단을 보면 50대 이상이 15%밖에 안 된다. 85%가 20~40대 유권자다. 연령 때문에 나타나는 격차도 보정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대리투표 문제는 선거인단 신청 때 실명인증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방지가 된다. 공개투표의 경우 불시에 전화가 가서 1분 내에 선거절차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 데이터가 그대로 남는 문제는 투표 결과만 활용하고 데이터를 영구 파기하면 해결된다.

▶박형준=기술적 문제 이전에 이번 모바일 선거인단조차 동원된 게 아닌가. 같은 IP에서 무더기로 접수된 사례가 있었다. 이런 게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거다. 해외에서 기술적 해결책이 있어도 전자투표를 도입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만 한 정치·사회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이준한=모바일 투표는 선거비용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바일 민주주의’가 실현됐다고 평가하기엔 이르다. 직접선거와 비밀선거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외국 사례도 없다. 그만큼 위험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모바일처럼 간단한 방법에 길들여지다 보면 쉬운 방법이 아니면 투표를 안 해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도 있다. 또 휴대전화로 쉽게 투표하는 인구층이 있는 반면, 휴대전화 사용이 힘든 인구층도 분명히 있다. 평등성이 훼손돼 투표 결과가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

▶사회=모바일 투표의 위헌 가능성은.

▶박형준=투표는 어쨌든 신성한 것이다. 헌법상 권리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으면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선관위가 정당 선거라 관여할 바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투표의 공정성과 신뢰성, 비밀 보장엔 상당한 문제가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지병문=모바일 투표를 공직 선거에 도입해 의원이나 대통령을 뽑겠다면 위헌 문제가 생길 거다. 하지만 당내 경선에서 도입하는 문제는 다르다. 선관위에서도 법률적으로 시비하지 않는다. 하나의 IP에서 선거인단이 많이 들어갔다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내 컴퓨터로 10명이 함께 신청할 수 있는 거다. 각자 휴대전화로 인증번호가 오기 때문에 본인 확인이 가능하다.

▶박형준=투표장에 가서 투표하는 사람과 마치 게임하듯 투표하는 사람 사이에 형평성이 어긋난다. 우리나라는 워낙 휴대전화 보급률이 높아 문제가 덜 된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휴대전화 없는 유권자들은 어떻게 처리할 건가. 법률적으로 말끔하게 정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병문=당내 선거에선 위헌 소지가 없다. 우리가 당내 경선에서 도입한 것은 위헌 여부와 상관이 없는 문제다. 공직 선거에 도입한다면 위헌 여부를 따져야 한다. 그러나 당내 경선의 경우 많은 사람이 참여해 후보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 의도로 모바일 투표를 도입한 거다.

▶사회=여론조사를 투표 결과에 반영하는 문제도 여전히 시빗거리다.

▶박형준=여론조사는 전체 국민의 지지율을 파악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투표 방식은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의 특수성 때문에 나온 방법이다. 한나라당은 그간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으므로 그걸 해소하는 방법으로 여론조사를 활용해왔다.

▶이준한=여론조사를 투표 결과에 환산해 반영하면 표의 등가성이 지켜지지 않는다. 한나라당에선 여론조사 1명이 5표, 신당 경선에선 1명이 7~8표에 해당되는 표로 계산됐다. 심지어 한나라당은 6000명 조사하려다 다 채우지 못하고 끝났는데, 여론조사 결과로 순위가 바뀌었다. 여론조사 설문항목에 따라, 응답률에 따라 선거 결과가 뒤집힐 수 있다면 상당한 위헌 소지가 있는 거다.

▶박형준=여론조사 결과가 전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해 반영하는 거다. 같은 조사를 1000번 하더라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여론조사 도입 논리와 투표의 논리가 다른 것이므로 동등한 수준에서 비교할 순 없다.

▶지병문=여론조사 비율에 따라 이를 투표수로 환산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신당도 여론조사를 10% 반영했지만 과연 여론조사 지지율을 표로 환산해 반영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선 토론이 더 필요하다.

현장서 본 모바일 투표

'바람' 일으켰지만 조직의 힘 못이겨

모바일(휴대전화) 투표는 대통합민주신당의 ‘흥행 상품’이다. 지역 경선의 저조한 투표율(16.2%)로 고전하던 신당은 사상 최초로 실시한 모바일 선거(투표율 75%) 때문에 흥행에서 기사회생했다.

신당에서 모바일 투표 도입 논의가 시작된 것은 8월 초다. 당시 경선 후보였던 한명숙 전 총리가 “국민 참여를 획기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처음 제안했다. 이후 ‘컷 오프’(9월 5일 예비경선)를 앞두고 논란이 격화됐다. 특히 한 전 총리 측은 정동영 후보 측의 동원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국민 참여를 희망하면 모바일 투표를 수용하라”고 압박했다.

당시 이해찬·유시민·한명숙 등 ‘친노(친 노무현) 후보’ 측은 정 후보의 조직력에 밀려 모바일 투표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손학규 후보 측도 기술적 문제를 보완해 실시하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정 후보 측은 대리투표 가능성을 제기하며 부정적이었다.

실제 모바일 투표는 지역 경선에 비해 조직의 힘이 덜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강한 조직력을 보인 정 후보는 모바일 투표에서 손 후보에게 3연패 당했다.

모바일 투표의 위력은 9일 1차 투표에서부터 확인됐다. 3만 명 대상의 첫 선거에서 투표율은 70.6%였다. 2위에 머물던 손 후보가 1위로 올라서면서 국민적 관심도 쏠렸다. 신당 홈페이지엔 가입 신청이 폭주했다. 접수 마감일이었던 10일엔 하루에만 5만여 명이 몰려 총 23만8000여 명이 선거인단으로 등록했다. 모바일 투표 선거인단 연령별 비중에선 19~39세(58.1%)가 절반을 넘어 젊은층의 관심도 끌었다.

정리=정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