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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비전과 정책으로 대결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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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선은 시대의 화두(話頭)를 위한 뜨거운 토론장이어야 한다. 사회의 핵심 과제를 놓고 후보들은 비전과 정책으로 대결해야 한다. 선거는 2개월여밖에 안 남았는데 아직도 단일화니 뭐니 하면서 후보 타령을 한다면 언제 시대의 화두를 논할 것인가. 1987년 군정종식 논란, 92년 문민개혁, 97년 여야·지역 교체와 외환위기 탈출, 2002년엔 세대 교체와 진보-보수 대결이 화두였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수락연설을 통해 화두거리를 내놓았다. 그는 “20%만 잘살고 80%는 버려지는 한나라당식 정글 자본주의, 약육강식 경제, 이명박식 경제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20 대 80은 노무현 대통령 정권이 애용해 온 대표적인 포퓰리즘(populism·대중영합주의) 수치다. 그런 정치적 복심(腹心)이 눈에 보이긴 하지만 정 후보는 일단 경제 양극화, 교육 양극화를 시대의 문제로 제기했다. 당연히 이명박 후보는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주요 후보는 이런 문제들을 놓고 처절한 논리 싸움을 벌이고 유권자는 심판하면 된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성장을 통한 양극화 해소’라는 해법을 주창한다. 7·4·7(10년간 7%씩 성장, 2017년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이 대표적이다. 그는 법인세 최고 한도 인하, 12조원 감세, 5년간 일자리 50만 개 창출, 14조원의 대운하 건설, 부동산 세금 인하 등을 제시한다. 반면 정 후보는 ‘함께 가는 성장과 분배’를 강조한다. 그는 성장률 목표를 6%로 낮추고 파생금융상품 거래세 등 일부 증세도 제안하면서 교육·직업·주거·노후에 국가가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기능을 놓고도 이 후보는 ‘작은 정부’, 정 후보는 ‘통합된 정부’를 옹호한다. 통합은 복지를 강조하는 용어다.

두 후보의 장밋빛 공약엔 스스로 충돌하는 내용들도 있다. 이 후보는 대학입시를 자율화하면서 동시에 사교육비가 대폭 줄어들도록 하겠다고 했다. 경쟁을 하다 보면 사교육이 늘어날 수 있는데 어떻게 이를 줄일 수 있는지 구체안을 내놓아야 한다. 정 후보는 이 후보의 대운하를 이명박식 토목경제라고 비난하면서도 ‘한반도 N자형 개발’을 공약으로 선전한다. 행정도시·기업도시·혁신도시 같은 현 정권의 개발 바람 부작용을 그는 알고나 있는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6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이 기간에 서로의 정책 대안이 충분히 토론돼야 한다. 양극화, 성장과 분배, 공교육과 사교육, 정부의 크기뿐만 아니라 다른 중요한 문제도 화두로 등장해야 한다. 대북한 포용과 견제, 공기업 수술, 언론자유, 노 정권 유산의 정리, 한·미동맹 재건을 놓고도 후보들은 치열한 논리 싸움을 벌여야 한다. 후보를 뽑자마자 또 다른 후보를 거론하는 단일화 논쟁보다 실제 손에 쥘 수 있는 정책 대안에 대한 토론이 본격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