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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사이렌 울려도 ‘베팅한다’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중국 주식투자 열기가 뜨겁다. 올해 들어 지난 10월 5일까지 국내 주식투자자들이 펀드를 통해 중국 증시에 쏟아 부은 돈은 11조원이 넘는다. 같은 기간 한국 증시 투자 규모(9조6000억원)보다 많다. 이쯤 되면 국내 재테크 시장은 ‘중국 천하’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국내 주식투자자들이 ‘중국 잔치’로 들떠 있는 사이, 세계 곳곳에서는 ‘중국 주식투자 주의보’가 잇따라 발령되고 있다.


“중국 주식시장의 랠리가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어떤 시점에서 반드시 큰 폭락을 맞이할 것이다.”(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중국 증시는 2500포인트를 돌파한 후 거품 시대에 진입했다. 거품은 필연적으로 꺼질 것이다.”(앤디 시에 전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 “중국 증시가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 지금이 증시에서 벗어날 좋은 시점이다.”(리우 얼페이 메릴린치 중국법인 회장) “중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아졌다. 주가수익비율(PER)이 50~60배에 달하는 것은 명백한 버블이다.”(리카싱 청쿵그룹 회장) “중국 증시는 수출이나 기업 이익 감소세로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은행에서 대출 받아 주식에 투자하는 행태가 많아지는 등 중국 경제를 위험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OECD)

최근 국내에서는 중국 주식투자 붐이 일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거품(버블) 논쟁이 한창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 증시의 거품 논쟁이 ‘거품의 존재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닌 ‘거품의 붕괴 시기’에 대한 논쟁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중국 증시는 이미 거품 시대에 접어들었고 남은 것은 ‘언제 거품이 꺼질 것인가’라는 말이다. 중국 증시의 거품 논쟁에 불을 지핀 인물은 바로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다. 그는 지난 5월 23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중국의 현 호황은 지속될 수 없다”며 “글로벌 경제는 앞으로 다가올 중국 증시의 거품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렸던 그린스펀은 실제 타격이 어느 정도일지 추산하기 전까지는 가볍게 입을 여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그의 경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 물가 급등 등 고성장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중국 경제 상황이나 정부의 긴축에도 더욱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는 증시를 보면 그린스펀의 경고가 단순히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지난달 중국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6.5%를 기록, 1996년 12월 5.6%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중국 물가는 지난 1월 2.2%로 출발해 6월 4%대를 넘어선 뒤 7월 5.6% 등 상승폭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증시도 ‘통제범위를 벗어났다’고 표현될 정도로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2006년 130% 이상 오른 중국 증시(상하이종합주가지수)는 정부의 긴축정책에도 불구하고 올해 이미 110% 이상 오른 상태다. 올 초 2000포인트대로 시작한 상하이종합주가지수는 1월 22일 3000포인트를 돌파한 데 이어 4월 30일 4000포인트, 8월 13일 5000포인트를 경신했고 10월 8일에는 6000포인트마저 넘어섰다. 대략 3개월 간격으로 1000포인트를 돌파하는 진기록을 세우고 있는 것. 전 세계 증시가 동반 상승 추세에 있다지만 중국 증시의 가파른 상승세는 가히 폭발적이다. 지수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자산비율(PBR) 등 기업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들도 기록적인 수준에 달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10월 11일 현재 상하이종합주가지수의 평균 PER은 53.84배, PBR은 7.16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선진국 시장 평균(15.7배)의 3.4배, 이머징마켓 평균(17.5배)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2000포인트 돌파 이후 고평가 논란에 휩싸인 국내 증시(코스피지수)의 PER과 PBR도 각각 18.11배, 1.89배에 불과하다. 즉 상하이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의 주가는 실적(주당순이익)이나 보유자산(주당순자산) 등 가진 것에 비해 지나치게 고평가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다수 증시 전문가가 중국 증시를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에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증시가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높은 경제성장률과 저금리 등으로 증시 주변에 돈이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넘치는 유동성은 주가상승의 밑거름이 되고 있지만 거품 형성 요인도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하이 증시의 월 평균 거래대금은 GDP의 20%를 넘어선 상태다. 김환호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2년 연속 주가가 고공행진을 해오면서 상하이종합주가지수의 PER, PBR도 기록적인 수준으로 올랐다”며 “고성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지만 여타 국가와 비교하면 중국 증시는 과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징 올림픽 후 경착륙 가능성 높아 최근에는 중국 증시의 과열양상을 1980년대 일본, 1990~2000년대 미국 나스닥과 한국 IT 거품 붕괴와 비교하는 보고서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UBS는 3일 발표한 투자전략 보고서에서 상하이 증시가 80년대 일본과 2000년대 나스닥 거품을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UBS는 “상하이 증시의 PER은 80년대 일본(73.4배)과 2000년 미국 나스닥(86.9배) 버블 당시보다는 낮지만 PBR은 이미 일본(4.2배)의 버블 수준을 뛰어넘었다”며 “상하이 증시는 거품이 점점 커지고 있고, 기업들의 이익 모멘텀은 둔화되고 있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동부증권도 중국 증시가 80년대 일본 증시의 거품과 그 궤적을 같이하고 있다며 투자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장화탁 동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증시는 통화 강세, 저금리, 무역수지 흑자, 투자자들의 광기 등 거품이 형성되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며 “80년대 일본의 버블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시가총액은 GDP의 140%에 달했는데 거품시대에 접어든 중국 증시도 최근 시가총액이 GDP를 뛰어넘는 등 최고조에 달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난 2년간 중국 증시가 고수익 잔치를 벌여왔지만 이제는 잔치 이후의 뒤처리를 걱정해야 할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중국 증시의 거품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중국 내부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애널리스트 중 80%가량이 “주식에 거품이 끼었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중국 정부가 올 들어 지급준비율을 일곱 번 인상하고, 금리를 네 번 올린 것도 이 같은 거품 붕괴 우려 때문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저우샤오촨 총재는 “중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의 PER이 너무 높다. 버블이 어느 곳에 끼어 있는지 모르지만 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국 증시의 거품은 언제 꺼질까? 이와 관련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다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그 전조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앤디 시에 전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반적인 증시 상승 주기가 2~3년인 점을 감안하면 2005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중국 증시의 거품은 향후 1년 전후로 붕괴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가 경착륙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에 투자심리 위축 등으로 중국 경제가 경착륙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미국 경제가 부진한 상황에서 중국 경제마저 위기에 빠질 경우 세계경제 성장률은 2%대로 급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팎으로 거품 붕괴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중국 증시나 주식투자자들에게는 ‘쇠귀에 경읽기’다. 오히려 중국 증시나 주식투자자들은 글로벌 증시 전문가나 정부당국의 거품 경고를 매수 사인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그린스펀의 경고 이후 상하이종합주가지수는 무려 1600포인트나 올랐고, 중국 정부의 지급준비율·금리·거래세 인상 등 3각 긴축정책에도 증시는 활활 타오르고만 있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증권사 한 대표이사는 “중국에서도 버블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주식계좌 수가 하루 평균 30만 개씩 터지고, 시가총액이 GDP를 상회할 정도로 투자심리는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있다”며 “광기에 가까운 투자심리가 거품붕괴 사이렌마저 고장 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중국 현지 못지않게 국내에서도 중국 주식투자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어 우려된다. 최근 시장에서는 “중국 주식은 아무 생각 없이 묻어두면 돈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 현재 국내에서 팔리고 있는 해외주식펀드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단연 차이나펀드다. 10월 5일 기준 차이나펀드의 수탁액은 11조5817억원으로 해외주식펀드 전체 수탁액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차이나펀드 투자 열기는 최근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차이나펀드가 올 상반기에만 60%가 넘는 기록적인 수익률을 올리자 너도나도 중국 주식투자 열풍을 쫓아가고 있는 것이다. 올 상반기 이후 불과 3개월 만에 차이나펀드의 수탁액은 6조5000억원가량 늘었다. 매달 2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집중된 것. 한국도 중국 투자 바람 거세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및 이머징마켓 펀드의 수탁액은 4조6000억원 증가했다. 통상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및 이머징마켓 펀드는 전체 자산의 20~30%가량을 중국 관련 주식에 투자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최근 3개월간 중국 주식에 투자된 국내 자금은 총 7조5000억원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박현철 메리츠증권 펀드매니저는 “올 상반기 이후 차이나펀드의 자금 유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며 “버블 경고에도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시장의 투자심리도 대세상승으로 치우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차이나펀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데는 국내 자산운용사들도 한몫하고 있다. 단기 수익률 위주로 인기상품만 개발하다 보니 차이나펀드의 비중이 점점 커지게 됐다는 지적이다.

실제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지난 2년간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만든 차이나펀드(종류형 클래스펀드 포함)는 무려 60개에 달한다. 중국에 주로 투자하는 친디아 및 브릭스펀드까지 합치면 80개 넘는다. 매달 3개 이상의 새로운 펀드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는 전체 해외주식펀드의 10%가 넘는 수치다. 자산운용사 한 상품개발담당자는 “중국 증시의 가파른 상승으로 차이나펀드의 수익률도 고공행진하면서 투자자들이 차이나펀드만 찾고 있다”며 “펀드 운용수익으로 살아가는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는 잘 팔리는 상품을 먼저 선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증시 전문가들은 차이나펀드가 여전히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중국 증시의 거품 붕괴 위험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분산투자, 현금화 등을 통한 리스크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때라는 충고다. 임종복 도이치자산운용 이사는 “국내에서 운용되고 있는 차이나펀드 대부분은 중국 본토 시장이 아닌 홍콩 H시장에 투자하기 때문에 버블 위험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할 수 있다”며 “다만 최근 국내외 펀드 수탁액을 보면 중국 시장 비중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중국 증시에 낀 거품을 고려한다면 이제는 욕심을 내기보다는 환매 또는 분산투자 전략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임상연 기자 (sylim@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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