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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숙자의 일기 (5)-끝] '노가다'보조 면접도 14번 딱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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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숙기 5,끝>

12월 중순. 직업소개소 등을 돌며 여러군데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배운게 없어 '노가다' 보조라도 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갔지만 번번히 딱지를 맞았다. 무려 14번 딱지를 맞고 보니 극도의 좌절감과 암울함에 도대체 빛이 보이지 않았다. 누가 노가다를 아무나 할 수 있다고 했던가.

오토바이를 타지 못했지만 배달직이라도 해 볼 심산으로 식당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다 초보자는 사절한다고 했다.

어깨는 쇠뭉치를 달아 놓은 듯 축쳐져 있고 마치 내 친구인 양 20년을 날 따라다니는 머피의 법칙은 그 절정에 달한 듯 하다.

웃으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자위해 보지만 그 순간 뿐. 냉혹한 사회는 소설처럼 술술 풀리지 않았다.

"어디를 가야 하지...어디로 갈까?"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추위가 온몸을 엄습한다. 마음과 몸이 추운 느낌은 체감온도를 더욱 더 떨어뜨리고.

목적지 없이 무지하게 걸었다. 무지무지 걷다 보니 어느듯 추위의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상가내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3시간을 머물렀다. 밖으로 나왔다. 또 추웠다. 다시 지하철로 들어갔다.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거기서 돌아다니다 지하도로 나와 잠을 청했다. 신이 있다면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이거 해도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젠장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20년 동안 날 괴롭히는 악운이 아직 떨어지지 않으면 나더러 죽으라는 말입니까. 어떻게 막다른 벼랑끝으로 나를 몰아 세우는 겁니까. 장난도 아니고 말이야."

따뜻한 잠자리와 따뜻한 밥 그리고 따뜻한 일자리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 거리를 떠돌다 보면 2천원에 따뜻하게 잠잘수 있는 방법도 터득된다.겜방에 12시경에 들어가 2천원 정액을 신청하고 1시간 55분쯤 인터넷 하다 잠든척 한다. 이럴땐 겜방에서 일하는 알바가 착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알바 잘 못 만나면 어김없이 깨워 밖으로 내 쫓기 때문이다.

아침 8시쯤이면 겜방이 청소를 하기 위해 창문을 열기 때문에 몹시 춥다. 자동 기상해서 밖으로 나오면 된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어렵사리 식당에서 식기를 세척하는 일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왕재수인가.

취직한 첫날 오전 11시쯤 생전 아프지도 않던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극도의 좌절감에 만성소화불량이 걸렸는데 이게 화근이 된 것이다.속이 메슥거렸다. 그대로 참었더니 토하기 직전상황까지 갔다. 얼굴색이 창백하자 식당 주인이 '어디 아프나'며 묻는다.

"아니요, 잠깐 속이 안좋아서. 괜찮아요." 주인에게 아무일 없다는 듯이 대답했지만 주인은 조용히 나를 주방 뒷편으로 불러냈다.

"집에 가서 옷입고 와라."

난 금방 주인의 뜻을 알아차렸다. '짤렸다'는 뜻이다. 주인을 내가 몹쓸병에 걸린것 아니냐는 표정을 지었다.

난 그 자리에서 하소연했다. 열심히, 성실히 일하겠다고. 아무리 하소연 했지만 주인은 날 택시에 태우고 직업소개소로 향했다.

택시안 라디오에서는 일기예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일부터 본격적인 강추위가 예상되며 눈오는 곳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내 첫 직장은 나가리가 됐다.

10년지기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나다"

"누구세요"

"야 나다"

"너 어떻게 된거냐. 연락도 없고"

"잠수중이다"

"**한테 얘기 들었는데 요세 머하냐?"

"임마 형이 머 하냐면 그냥 있지 임마"

"미친놈"

"야 얼굴 한번 보자"

"야 나 지금 엄청 바쁘거든. 다음에 보자"

"바쁘냐 다음 언제"

"내가 연락할께 끊어"

"여보세요 여보세요....뚜뚜두"

친구녀석은 내 연락처를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연락할 핸드폰도 없다. 나중에 연락하자구. 생쑈하네 자식.

그 녀석은 업소생활 할 때 일수돈 쓰고 건달들한테 협박당할 때 내가 돈을 긴급 융통해줘 무사히 넘겼던 놈이다.

내가 초라하고 보잘것 없으면 친구도 이렇게 날 멀리 하는 걸 왜 몰랐던가.

어머니에게 안부도 전할 겸 전화를 했다.

"잘있지"

"걱정마, 밥도 잘먹고 잘 지내구 있어. 보기엔 말랐어도 몸은 건강하니까 걱정마."

"할매는 잘 계시지...동생도."

"........"

"이번 설엔 함 온나.몇년째고. 올해는 우째든간에 꼭 내려와야 된데이."

"알써 내려갈께"

수화기를 내려놓고 애궂은 전화기만 내리쳤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이 초라한 몰골로 할머니 얼굴을 뵐수가 없네요. 떳떳하게 취직해서 올 추석에는 꼭 내려가 뵈도록 할께요.

<디지털 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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