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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장 의원들 "이젠 말할 수 있다"] 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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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치판을 떠나는 의원들의 고언(苦言) 속에는 한국 정치의 추한 모습이 다 들어 있다.

부정, 불신, 사명의식과 정체성 결여…. 불출마 의원들은 "17대 총선이야말로 새 정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송석찬(열린우리당.대전 유성)의원은 초선인데도 불출마를 결심했다.

그는 "대선자금 추문 등으로 얼룩진 정치에 대해 유권자들에게 속죄하는 마음도 있다"고 했다. 宋의원은 정치신인들에게 "무엇보다 검은 돈을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그는 "잘 아는 사람인데도 돈을 주면서 영수증을 안 받겠다는 거예요. 수상쩍은 돈이니까 그렇겠지요. 안 받으면 돈도 잃고 사람도 잃을 것 같고…. 작심하고 그 족쇄를 뿌리쳐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판사 출신의 박헌기(한나라.영천.3선)의원은 변호사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는 "정치가 국민에게서 이토록 원성을 들을 때가 일찍이 없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민은 정치권을 모두 도둑놈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저 소박하게 보면 정치라는 게 국민이 정부와 정치인을 믿고 자기 생업에 충실하도록 해 주는 건데 거꾸로 정치 때문에 국민이 불안하니 말이 됩니까"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정치권이 신뢰를 회복할 길은 정치개혁밖에는 없습니다"라고 당부했다.

오세훈(한나라.서울 강남을.초선)의원은 들어오는 신인들에게 '금배지 사명감'을 강하게 주문했다.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출마하는 게 그냥 금배지 자체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뭔가 꼭 국회에서 할 일이 있어서인지…. 할 일이 있다면 어떤 상임위에서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 구체적인 생각을 세워야지요. 그냥 건교위니 재경위니 산자위니 소위 물 좋은 곳에 가려는 거라면 정치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게 좋지요."

장성원(민주.김제.2선)의원도 "신인들은 국회의원이 감투가 아니라 국리(國利)의 공정한 조정자 역할이라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유흥수(한나라.부산 수영.4선)의원은 '인격을 갖춘 국회'를 주문했다. "소리지르고, 근거 없이 폭로하고, 공무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질문이나 하고…. 17대부터는 이런 못난 국회는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떠나는 의원들은 당 지도부에 대한 고언도 남겼다.

김용환(한나라.보령-서천.4선)의원은 "한나라당이 아무리 진보 흉내를 낸다 해도 시민단체나 민노총이 지지하지 않습니다"고 했다. 그는 "물갈이에 휩쓸릴 게 아니라 당은 건전보수라는 정체성을 찾고 국정경험 세력을 중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송웅(열린우리당.서울 용산.초선)의원은 당에 강한 개혁성을 주문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은 온갖 산고(産苦) 끝에 태어났으므로 그 고생이 값지려면 모든 면에서 달라져야 합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의원들이 소신을 가지고 표결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남정호.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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