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독서실>한국과 그 이웃나라- 이사벨라 버드 비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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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 책은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인 비숍여사가 1894년 겨울과 1897년 봄 사이 한국을 네차례 답사하며 직접보고 느낀 점을 유려한 문체로 그려낸 역작으로 1백여년전 열강들의 세력다툼 속에 신음하던 우리네 삶을 생생하 게 그려내고 있다. 당대 우리사회를 담은 다른 작품인 윌리엄 그리피스의 『은둔의 나라 한국』이나 프레드릭 매켄지의 『한국의 비극』보다 서구인의 편견에서 어느정도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사심없이 접근하는 미덕이 돋보이며 이 번에 한국어로는 처음 번역되었다.
비숍여사는 고종이 가장 신뢰하던 외국인중 한사람.명성황후와도존경과 우정을 나눈 친구사이로 나룻배와 조랑말,그리고 도보로 내륙의 방방곡곡을 여행하면서 겪은 다양한 사건을 진솔하게 기록한다. 외국인이 구한말의 정치.경제.문화를 이같이 재현한 책이거의 없을 정도로 상세한 묘사가 놀랍다.길가에 내버려진 쓰레기의 내용물에서부터 식생활.요리.양념.빨래등의 6가지 공정,결혼식의 8가지 순서,장례식의 11가지 절차,기생의 춤과 무당의 춤,동해안 어촌마을의 그윽한 정취,한국귀신들의 계보,동학지도자김개남의 효수된 머리가 개에 뜯어먹히는 장면까지 꼼꼼이 적어나가고 있다.
한국의 첫인상에 대해 『야만스럽다』『인간 쓰레기들』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던 여사는 점차 한국에 빠져들어 『예의 그 기묘한 흰 옷을 입고 신중하게 걷는 남자들과 무리지어 걸음마다 활기 넘치는 아낙네들은 한번 본 이방인들이 결코 이땅을 떠나고싶지 않게 만든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우리가 잊기 쉬운 1백년전의 우리 자화상을한번 뒤돌아보게 하는데 훌륭한 참고서가 될 것 같다.도서출판 살림 펴냄.6백3쪽.1만2천원.
〈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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