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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할말은하자>10.학생비위 맞추는 교수들 무너지는敎權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지난해 9월 중순 강원대 지구물리학과 朴昌庫교수(60)는 대학의 주인인 교수와 학생들을 겨냥해 메가톤급 폭탄을 던졌다.
황폐한 국내 대학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적시한「대학사회의 위기와 문제…이제 교수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긴 제목의 대학실태백서가 바로 그것이다.
朴교수의 보고서는 대학교육의 파행성을 충분히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대학으로서도『설마 이 지경까지…』하는 경악과 자괴감을 불러일으키는데 모자람이 없는 강도였다.
그중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흔들리는 교수들의 권위와 추락하는 교권을 지적한 대목들이었다.
朴교수의 백서가 무너지는 교권에 손도 못대는 무기력한 교수들의 실상을 지적한 것만도 보고서의 절반 분량.
-교정에서 잘못을 지적하는 교수에게『미안해요,아저씨.잘 몰랐어요』라고 되받아친다.
-교수들이 학점이 낙제점을 밑도는 학생간부들에게 징계는 커녕뇌물성 외유까지 보내준다.
-잔디밭에서 학생들이 만취한채 고성방가 하다가 타이르는 교수에게『교수면 다냐』며 주먹을 휘두른다.그러나 보직교수들은 이들을 처벌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학부생 전원에게 A학점을 주는 교수도 있는가 하면 어떤 교수는 시험문제를 미리 가르쳐주거나 아예 오픈 북으로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이런 충격적인 내용의 보고서가 나온지 채 한달도 안된 같은해10월21일,교육부는 朴교수의 백서가 거짓이 아님을 입증이라도해주듯 14개 국립.사립대에 재직중인 교수 5백98명에게 주의.경고 조치등 무더기로 「옐로카드」를 꺼냈다.
이들 교수들의 징계 사유는 다름 아닌 「직무유기」다.
출석일수 부족등으로 학점 취득이 불가능한 학생에게 학점을「후사」하거나 아예 출석 자체를 부르지 않는등 교권의 핵심인 학생들의 성적관리를 부실하게 관리하거나 방치한 과오였다.
그러나 이는 학사관리의 중책을 맡고 있는 교수들 스스로 적당주의와 온정주의로 상아탑과 교권을 둘다 침몰시킨 수많은 예중 몇가지에 불과하다.
〈表載容기자〉 공부는 뒷전으로 팽개친채 학생운동에만 매달려도졸업장을 따내는 학생들.반면 학생들에게 구타당하고 눈앞에서 자행되는 학생들의 비행과 월권에도 아예 눈을 돌리거나 입을 다무는 대다수 교수들.
교수들의 이같은 보신주의와 무소신주의에 대한 이유로 거론된 것은 여럿이지만 가장 큰 설득력을 얻는 것은 바로 다음의 지적이다. 지난날 열병처럼 불었던 대학민주화투쟁에서 무능.어용교수로 지탄받던 일부교수들이 보신주의에서 학점을 남발하거나 학사관리를 엄격하게 해오지 않았던 관행이 어느샌가 확산돼 그대로 관행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D대 영어과 金모교수(47)는 『총장선거제와 교수평가제를 실시하는 대학이 날로 늘어가고 인기없는 교수가 살아남기 어려운 요즘같은 경우엔 후한 학점으로 학생들에 영합하는 길밖에 없다』고 자조섞인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던 학생들의 인기에 영합한 교수들만의 주장이 힘을 얻고 대다수 교수가 침묵하는 이상스런 풍토가 우리 대학에 미치는 악영향은 위험 수위를 넘은 상태다.
그중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인기에 영합해 파행적으로 전개되는 학사 운영과 교육이다.
서울 모여대의 경우 올초 인기없는 전공선택과목들이 시간이 겹친 인기있는 교양강좌에 밀려 상당수가 폐강돼 버리는「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그러나 누구하나 나서서 문제를 지적하는 교수가없어 2학기 교과 조정에 애를 먹는 웃지못할 해 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K대 사회학과 朴모교수(49)는『지난 3년간 우리나라 교수중단 한권의 학술서적이라도 낸 교수가 전체의 18%에 불과하다는사실은 학생들의 비위만 잘 맞추면「한번 교수면 영원한 교수」가되는 현 교육제도가 빚은 비극』이라고 단언한 다.
『땅에 처박힌 교수들의 권위는 바로 우리 교수들의 책임입니다.잘못한 학생들을 꾸짖지도 못하는 교수가 단순히 지식을 파는 학원강사와 다를게 무엇입니까.』 무너져가는 교권은 방치한채 보직과 인기에 연연해 눈치보기에만 급급한 상당수「정치적인」교수들의 요즘 행태에 宋 梓연세대총장이 던지는 충정어린 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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