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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휴대폰 요금 '규제 왕국' <상> 유럽·미국·일본 시장에 맡기니 요금 뚝 떨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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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에서 '쇼핑 1번지'로 꼽히는 도쿄(東京) 하라주쿠(原宿) 한복판. 일본 3위 이동통신 회사인 소프트뱅크모바일의 대형 매장도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 매장에선 월 기본료 980엔(약 7700원)을 내면 오전 1시~오후 9시 공짜로 망내(網內) 통화를 할 수 있는 '화이트 플랜'이란 상품이 인기다.

니시야마 유키나리(西山幸成) 부점장은 "1월에 이 요금제를 도입할 당시만 해도 경쟁사들은 우습게 봤지만 회원이 벌써 700만 명을 넘었다"고 말했다.

일본은 세계에서 이동통신요금이 비싼 나라로 꼽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일본의 휴대전화료(지난해 월 114분 통화 기준)는 30개 회원국 중 다섯째로 높다. 이는 일본의 물가를 고려해 비교한 것으로 가격으로만 따지면 회원국 중 단연 으뜸이다. 이랬던 일본의 이동통신요금이 최근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요금 파괴 경쟁은 지난해 3월 일본 3위 사업자인 보다폰 재팬을 인수한 소프트뱅크가 이끌고 있다.

유럽은 이동통신사업의 국경까지 허물었다. 영국의 보다폰은 독일.프랑스.네덜란드에 진출해 사업을 하고, 독일의 T모바일과 프랑스의 오렌지는 영국 시장에서 보다폰과 겨루고 있다. 또 유럽은 통신망을 빌려 이동통신사업을 하는 사업자(MVNO)의 천국이다. 이들이 휴대전화 요금의 가격 파괴를 선도하고 있다. 2005년 214개였던 유럽연합(EU)의 MVNO는 지난해 290개로 늘어나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 MVNO가 급증하자 영국 등 유럽 각국은 제도적으로 이를 관리하려다 그냥 놔뒀다. 시장에 맡긴 것이다.

이처럼 세계 이동통신 업체들은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으나 우리 정부는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하고 있다. 정부는 새 이동통신사업자의 진입을 가로막고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은 요금을 싸게 내놓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시장 지배력이 더 커지면 후발 업체들이 생존하기 어려워 건전한 경쟁구도를 만들 수 없다'는 정보통신부의 정책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지난달 말 망내 할인 계획을 내놨지만 아직 정부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 영국의 세계적인 유통업체 테스코는 통신망을 빌려 이동통신사업을 하지만 국내에선 그런 꿈조차 꾸기가 쉽지 않다.

EU 집행위원회의 통신규제정책 담당자인 이반 브린캣은 "EU는 회원국에 규제를 풀고 시장친화적인 정책으로 경쟁을 촉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이동통신사와 MVNO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지난해 회원국의 월평균 휴대전화 요금이 12% 정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경쟁을 붙이니 가격이 떨어졌고 그만큼 소비자들이 유리해졌다는 것이다.

휴대전화 보급률이 130%를 넘는 홍콩은 우리 돈으로 월 1만~2만원만 내면 일상 통화는 다 할 수 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요금이다. 인구가 우리나라의 14%인 700여만 명에 불과하지만 이동통신사는 4개로 우리(3개)보다 많다. 미국에선 60여 이동통신 회사 대부분이 '무료 망내 통화'를 도입하고 있다.

정보통신학회장을 지낸 홍익대 이광철 국제경영대학원장은 "요금은 시장에 맡겨야 자연스럽게 떨어진다"며 "보다 쉽게 이동통신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부터 헐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차진용(팀장).이원호(홍콩), 이나리(일본), 김원배(영국.프랑스.독일), 장정훈(미국) 기자,

☞◆망내(網內) 할인=같은 이동통신회사의 가입자끼리 통화하는 경우에 요금을 싸게 해 주는 제도다. 다른 회사 가입자에게 전화하면 해당 통신사에 통신망 이용료를 내야 하나 망내 통신은 그런 부담을 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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