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과 세계를 이은'음악의 다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호 05면

수산네룬뎅

많은 분이 한국 음악과 월드뮤직이 무슨 상관이냐는 말을 한다. 답부터 말하면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월드뮤직은 각 나라와 민족의 전통음악과 민속음악을 현대적으로 개량한 음악이다. 즉, 전통과 민속음악을 부모로 두고 태어난 자식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번 ‘2007 원월드뮤직 페스티발’(위원장 한대수)에 참여한 대다수 뮤지션이 ‘개량’에 성공한 거장들이다. 김수철의 ‘기타산조’, 정수년의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개량에 성공한 ‘한국적 월드뮤직’이다.

2007 원월드뮤직 페스티발

로스안데스

‘한국적 월드뮤직’을 찾아서
1990년대 월드뮤직의 인기가 높아지자 일부에서는 ‘월드뮤직은 진정한 대안음악’이란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대안이 아닌 ‘주류 음악’이 됐다. 월드뮤직이 주류 음악으로 부상한 데는 팝음악의 쇠퇴, 뚜렷한 트렌드 부재, 장르적 신선함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세계 여러 나라가 전통음악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멀리 북유럽 스웨덴에서 남미의 아르헨티나, 서부아프리카의 세네갈에서 동아시아의 대만까지, 각국이 자신들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개량하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나의 잘 만들어진 음악이 고부가가치는 물론 국가이미지 개선에 막대한 영향을 주어서다.

반만년 문화민족을 자랑하는 우리의 모습은 월드뮤직 시장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다. 오죽하면 ‘한국은 월드뮤직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몇 안 되는 나라’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을까.

이 문제는 한류와도 직결된다. 지금 한류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국 색’이 탈색됐다는 점이다. “보아와 비의 음악에서 한국적 색깔을 얼마나 느낄 수 있는가”라고 묻고 싶다. 이런 말을 하면 일부에선 민족주의자 운운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삼바리듬에 재즈와 클래식, 샹송의 무드를 섞어 보사노바를 만든 ‘보사노바의 아버지’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이나 기존의 전통탱고에 재즈와 클래식, 일렉트릭 악기들을 혼합한 ‘누에보 탱고’(새로운 탱고)의 창시자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모두 민족주의자란 말인가?

그들이 가장 먼저 이해한 것은 ‘전통’이었다. 전통만으로는 자신들의 음악적 표현방식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혼합을 시도했다. 그들의 시도는 오늘날 전 세계 음악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월드뮤직은 무엇이 어떻게 섞여도 자신만의 색깔이 오롯이 나는 장르다. 그러니 한류에서도 민족주의와 한국적 색깔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한국 음악인과 해외 뮤지션의 만남
올해 한국에서 첫선을 보인 ‘2007 원월드뮤직 페스티발’에서는 색다른 시도를 해보았다. 그것은 한국 음악인과 해외 뮤지션의 협연이다.
먼저, 윤상과 브라질 뮤지션 이방 린스의 협연이다. 윤상은 브라질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음악의 수혜자이다. 특히 이방 린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나는 두 뮤지션을 함께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

또 하나는 노르웨이 바이올린 연주자 수산네 룬뎅과 해금연주자 정수년의 협연이었다. 바이올린과 해금이 찰현악기이기 때문에 음악적 궁합이 잘 맞을 거라고 예상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뮤지션들도 서로 좋아했고, 관객들도 흡족해했다. 나는 처음부터 해외 유명 뮤지션들이 그냥 공연만 하고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원월드’라는 무대를 통해 서로 교류하고, 그러다 보면 함께 앨범을 낼 수도 있고 다른 해외 페스티벌 무대에서도 호흡을 맞출 수 있으리란 희망을 보았다.

한류에 있어 우리는 매우 이중적인 태도를 지녔다. 한국 문화를 어떻게든 팔려고만 하지, 다른 나라의 문화는 심할 정도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번 페스티벌에 참여한 미얀마·인도네시아·중국·베트남 음악이 한국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1년에 몇 번이나 소개되는지 생각해보자. 부끄러울 정도다.
‘원월드뮤직 페스티발’은 세계의 다양한 음악이 서로 교통하는 만남의 광장으로 태어난 것이다.

“청중의 환호가 최고의 보약” - ‘원월드’ 뒷얘기

여러 나라 뮤지션들이 모이다 보니 생각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해외 뮤지션들의 기상천외한 한국어 실력이다. 무대에서 한국말로 인사하라는 요구를 안 했는데도 대다수 해외 뮤지션은 한국어 인사를 준비해 왔다. “방가워요” “캄사함니다” “안녕흐세요”는 기본이다.
노르웨이 뮤지션 수산네 룬뎅은 공연 도중 열광하는 관객들을 향해 “다 미쳤어요!”라는 어려운(?) 표현을 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 공연을 간다고 하자 그의 주변 사람들은 22시간이나 비행기를 타야 하는 그 먼 나라를 도대체 왜 가느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한국에는 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난 그 사람들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러 가야 한다”는 대답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음악은 서정적이고 슬프지만은 않은데 한국에는 그런 뮤지션으로 인식된 것 같다”며 “이번에 고정관념을 깨뜨리겠다”는 다짐을 하고 무대에 올랐다. 그 말처럼 수산네 룬뎅은 무대에서 거의 로큰롤에 필적하는 화끈한 ‘포큰롤(Folk’n’Roll)’을 선보여 뜨거운 각광을 받았다.

공연 시간 늘리기 열기
워낙 많은 뮤지션이 무대에 서기 때문에 각 팀에 주어진 공연시간은 한 시간 정도였는데, 관객의 뜨거운 반응에 도취돼 공연을 더하면 안 되겠느냐는 뮤지션도 많았다. 브라질 삼바의 거장 조르지 아라거웅은 공연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나자 무대 뒤로 와서 “돈은 더 안 받을 테니 2시간 공연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고, 쿠바 밴드 ‘로스 방방’은 시간에 구애 없이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공연 시작 전 무대 뒤의 모습도 천태만상이었다. 브라질 뮤지션 이방 린스는 성냥갑만 한 민트케이스에 손가락을 튕기며 끊임없이 리듬을 반복하고 목소리를 조율했는데, 그래미상을 받은 세계적 거장의 진지한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자신을 비롯한 밴드 멤버 대다수가 이슬람 신자인 세네갈의 이스마엘 루는 라마단(금식 기간)이라며 금식을 했다. 그래서인지 최대한 힘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국립국악원에 유학 와 있는 미얀마의 양곤 쿼텟은 최근 일어난 ‘미얀마 사태’에 불안한 심경을 드러내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최고의 명연을 펼친 김수철을 공연 뒤 백스테이지에서 만났다. 엄청나게 땀을 흘리는 그에게 보약을 먹으라고 하자 그는 “청중이 보약”이란 명답을 했다. 관객의 열띤 환호야말로 최고의 보약이라는 말이다.
30년 넘게 무대에 선 그의 대중에 대한 자세는 우리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송기철씨는 MBC 라디오 ‘송기철의 월드뮤직’, 아리랑 FM ‘케이팝 존’ 등을 진행하며 여러 매체에 음악평과 음반 제작에 참여한 대중음악평론가이자 국악전문음반사 ‘케이 비트 뮤직’의 대표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