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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각 바뀌어도 총장 거취는 ‘노 터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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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13면

1974년 11월 ‘금권정치’ 비판 여론에 밀려 일본 총리직을 사퇴한 뒤 총리 관저를 떠나고 있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퇴진 후까지 ‘살아있는 권력’으로 군림했던 그를 도쿄지검 특수부가 76년 7월 록히드 사건으로 구속한 것은 일본 검찰사에 큰 획을 그었다. 다나카가 구속된 7월 27일은 ‘검찰 독립일’로 불린다. [중앙포토]

1993년 9월, 박종철 총장. “임기 중 물러나는 검찰총장은 저로서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

‘ 총장 임기’ 논란 속 한·일 검찰 조직 비교

2003년 3월, 김각영 총장. “인사권 행사를 통해 수사권을 통제하겠다는 새 정부의 의사를 확인하게 됐다.”

2005년 10월, 김종빈 총장. “죽은 고목에서 꽃이 필 수 없듯이,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 검찰이 인권과 정의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임기 도중 퇴진한 검찰총장들이 밝힌 퇴임의 변이다. 이렇게 총장들은 떠났고, 비장한 퇴임사만 남았다. 이 중 박 총장과 김각영 총장은 정권 교체를 전후해 임명된 인물이다.

88년 도입된 검찰총장 2년 임기제는 일본 제도를 본뜬 것이다. 일본에는 임기제 규정이 없지만 2년가량 총장직을 수행한 뒤 스스로 물러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검사총장(검찰총장) 명단만 훑어봐도 우리와 확연히 다르다. 일본 검찰의 경우 다다키 게이치(但木敬一) 현 총장까지 23명(46년 이후), 한국 검찰은 정상명 현 총장까지 모두 35명(48년 이후)이 총장직을 거쳐갔다. 평균 재임기간은 한국이 1.4년으로 일본(2.2년)보다 10개월이나 짧다.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일본 도쿄 다이토분카(大東文化)대 로스쿨 고상룡 교수의 도움을 받아 이 로스쿨에 있는 스즈키 미노루(鈴木實) 교수에게서 일본 검찰 조직의 특징을 들어봤다. 스즈키 교수는 도쿄지검 특수부 검사, 도쿄고검 공판부장 등을 역임한 검찰 간부 출신이다. 그는 “총장 거취가 정치적 영향을 받는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단 내각에서 검사총장을 임명하면, 그 누구도 터치하지 못합니다. 정권 교체로 총장이 바뀌는 일도 없지요. 검찰은 정치로부터 독립돼 있는 기관 아닙니까?”

스즈키 교수는 도쿄지검 특수부 검사 시절 리크루트 사건을 조사한 특수수사통. 88년 검찰은 리크루트사가 일본 정계에 뇌물과 미공개 주식을 전달했다는 의혹을 파헤쳐 결국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정권을 붕괴시켰다. 스즈키 교수는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정치적 압력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 검찰 조직의 독립성을 꽃피우는 데 결정적 계기는 76년 록히드 사건이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미국 항공사인 록히드사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두 손에 수갑을 채웠다. 당시 정계의 최대 거물이었던 다나카 전 총리 체포는 일반인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이 수사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여 년간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한 검찰이 홀로 서게 됐다. 검찰이 전방위적인 압력과 회유에 맞서 ‘거악(巨惡)’을 엄단한 데 대해 일본 국민은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국민의 신뢰는 이후 정치권의 간섭을 막는 차단벽이 됐다.

반면 한국 검찰은 국민의 ‘독립성 확보’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12·12 및 5·18 사건, 2002년 대선 때의 각종 폭로 사건 수사 등 대형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정치 외압’ 논란을 빚어왔다. 최근 신정아-변양균 사건과 정윤재 전 대통령 의전비서관 사건에서도 처음엔 미온적으로 대응하다 뒤늦게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서는 악습을 되풀이했다.

한·일 검찰의 또 다른 차이점은 총장 인사 시스템에 있다. 일본도 70년대 초반까지 검찰 고위 인사 중 상당수가 정계 유력 인사와 유착 관계를 유지했다. 73년 오자와 이치로(小澤一<90CE>) 총장이 임명되는 과정에 다나카 당시 총리의 입김이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록히드 사건 이후로는 서열 위주의, 예측 가능한 인사가 이뤄지고 있다.

형식상으로는 내각이 임명하지만 사실상 도쿄 고검장이 차기 총장으로 ‘예약’되는 시스템이다. 도쿄 고검장이 정년(63세)에 가까워지면 총장이 용퇴하는 방식이다. 총장 임명 때마다 출신 지역과 학교는 물론이고 정치적 ‘코드’까지 따지는 한국과 대조를 이룬다.

총장이 일하는 방식도 다르다. 일본은 총장에게 지휘감독권이 있지만, 검찰에 대한 인사권은 지역 고검장에게 분산돼 있다. 인사권이 총장과 법무부 장관에게 집중된 우리와 달리 일선 검찰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총장이 있는 최고검찰청(우리의 대검에 해당)에 수사 기능이 없다는 것 역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우리는 대검에 중앙수사부를 두고 총장 책임하에 수사를 진행한다. 일본에서는 크든 작든 수사는 일선 검사장 책임 아래 한다. 총장이 정치적 바람을 탈 소지를 없애는 장치다.

스즈키 교수는 “총장이 검찰 조직에 대해 일반적인 언급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구체적인 사건의 잘잘못을 얘기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한국 검찰에선 총장이 개별 사건에 관해 언급해 시비를 일으키곤 한다.

90년대 중반 대검에서 작성한 ‘21세기 기획단 보고서’는 “일본 검찰도 수뇌회의에서 수사의 큰 방향을 정하지만, 누가 어떤 의견을 개진했는지는 공표하지 않는다”고 제시했으나, 현실에 옮겨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부장검사 출신으로 일본 법제를 연구해온 성균관대 노명선 교수는 정치적 책임을 법무상(우리나라의 법무부 장관에 해당)이 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법무성(법무부)이 의회에 대응하는 방파제가 됨으로써 총장이나 검찰 간부가 의원들 앞에서 개별 사건에 관해 증언해야 하는 등 정치 공방에 휘말리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설명이다.

노 교수는 또 “검사의 수사 의지가 우선돼야 하지만, 그 의지를 믿고 지지하는 여론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일본 검찰의 치욕’으로 불리는 54년 ‘조선의옥(造船疑獄·조선업계의 정·관계 로비)’ 사건을 예로 들었다. 당시 검찰이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자유당(자민당의 전신) 간사장에 대한 체포 승인 품신을 올리자 법무상은 지휘권을 행사해 수사를 중단시켰다. 이때 지휘권 행사에 대한 비판 여론은 검찰이 향후 독립을 쟁취하는 힘이 됐다.

일본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 검찰권 독립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검찰 내부의 의지와 정치권의 간섭을 차단하는 인사 시스템, 자율성을 존중하는 조직 문화, 사회적 뒷받침이 어우러지면서 서서히 전통과 규범으로 뿌리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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