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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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41)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도 데리고 가 달라고 발목이라도 잡고 늘어지겠다는화순의 말에 길남이 놀란다.
『왜 나도 따라가겠다는데 뭘 놀라.』 『그건 말도 안됩니다.
』 『나한테는 말도 안되는 게,너한테는 말이 되는구나.그런 거구나?』 『전 진정으로 하는 말이에요.이게 하루 이틀 생각한 일인지 아세요.』 『그래? 그럼 어디 물어나 보자.우선,어디로가겠다는 건지나 알아야 할 거 아니니.』 『도망을 치는 놈이 어디로 가는게 무슨 문제예요.여기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죠.가는 곳이야 거기면 어떻고 저기면 어때요.가면 가는 거죠.』 『가면 간다구?』 고약을 싸 짊어지고 헌데골로 들어간다던가.밤새생각한 것이 죽을 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가면 가는 거라니.
누군 죽는게 무서워서 여기 이렇게 엎어져 살고 있는 줄 아는 건가.화순이 아랫입술을 깨문다.이러다가 아까운 젊은 사람 하나또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그녀의 등줄기를 뜨겁게 타고 내려간다. 『어떻게 살 건지는 나도 다 생각이 있어요.몸숨겨달라고 할아는 사람도 있구요.』 『어디로 가든 그건 또 그렇다 쳐.그런데…어떻게 해서 여길 나간다는 거야? 날개가 있어서 날아갈까?아니면?』 『저 정도 바다는 겁 안나요.』 『누군 헤엄을 못쳐서 못 나간다던? 섬을 삥 둘러치고 감시소가 있어.열에 아홉은사람살려 소리도 못하고 바다에서 그냥 맞아죽어.』 『그렇게 죽은 조선사람이 하나 둘인줄 알아?』 『안 잡히고 도망친 조선사람도 있어요.』 『쓰고 버릴 목숨도 있거든 그럴 수도 있겠지.
』 한숨쉬듯 말하고 나서 화순이 안타깝게 물었다.그 눈가에 물기가 어린다.
『그래,누구랑 가려는 거야? 몇사람이서 계획을 세우고는 있는거야?』 『나 혼자 갑니다.』 『잘났구나.차암 잘났구나.』 화순의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높아진다.
『그렇게 죽고 싶으면 그냥 물에 빠져서나 죽어.왜 퍼렇게 맞아서 물에 팅팅 불어서,사람들 보라고 거적때기에 싸여서 돌려가며,왜놈들 노리갯감이 되면서 죽겠다는 거냐.염하기 좋게나 그냥죽으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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