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66. 정주영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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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개발한 세계 최고 성능의 MRI를 도입하려고 했던 정주영 전 현대 회장.

나는 1983년 첫 MRI를 개발한 데 이어 또 한번의 무모함에 도전해 성공했다. 전자석의 세기가 첫 MRI보다 20배나 강한(2.0테슬러) MRI를 세계 처음으로 개발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세계 과학계에서는 그렇게 강한 전자석(초전도 자석)으로 MRI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자석이 너무 강한 나머지 기술적으로 또 생체학적인 면에서 인체 영상을 촬영하기 어렵다는 게 그 배경 이론이었다. 세계 어느 기업, 연구소도 그렇게 강한 전자석으로 MRI 개발을 그때까지 손도 못 대고 있던 때였다. 85년 나의 연구실에서 이 MRI의 영상이 처음 나왔다. 83년 첫 MRI에서 찍은 영상은 거기에 비하면 너무 초라했다. 내가 보기에 2테슬러 MRI에서 찍은 영상은 매우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세계 의료기기회사들이 깜짝 놀랐다. 이후 미국에서도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이들은 자장의 강도를 1.5 테슬러로 줄여서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금성사가 우리 기술을 전수 받아 88년 첫 제품을 내놨다. 대당 가격은 20억원에 이르렀다. 1호기는 서울대학 병원에 설치됐다. 당시 서울대학병원 고창순 교수와 고 한영철 박사, 방사선과 과장이었던 김주완 박사가 밀어붙여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는 미국 제품도 나와 있었고, 국산에 대한 불신이 심했던 때라 자칫 서울대에 집어 넣을 수 없을 뻔 했던 상황이었다. 국산이라고 하면 웬지 성능이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나는 1호기 개통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로서는 너무나 감개가 무량하다. 일본 국왕이 명치왕 이후로 고집해 오던 왕실 승용차를 롤스로이스에서 도요타로 바꿨는데 서울대가 비슷한 결정을 내려 너무 기쁘다.”

서울대는 1호기를 설치한 이후 1년 만에 20억원을 회수하고도 남았다. 현대 아산병원을 막 개원한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이 서울대 사례를 보고 국산을 도입하려고 금성사와 접촉하도록 현대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갑자기 그때 달러 환율이 떨어진 것이 화근이었다. 200만 달러로 책정된 가격이 한화로 20억이었기 때문에 금성사에서도 20억을 고집하였으나 환율 변동에 바삭한 정주영 회장이 이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현대측은 떨어진 환율을 적용해 15억원으로 달라고 하고, 금성사는 20억원을 받아야 되겠다고 버텼다. 가격 조정이 안 되자 정 회장은 외제를 사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정 회장은 대단한 애국자였으나 금성사가 너무 버티는 데 화가 난 나머지 외제를 사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 병원들은 정주영 회장이 국산을 사는지 안 사는지 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정 회장이 미국 GE로부터 MRI를 들여오자 연세세브란스병원 등도 독일 지멘스와 GE 제품을 사버렸다. 결국 금성사는 국내 시장만 해도 몇십대 팔 수 있었던 것을 정 회장과 협상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지멘스의 국내 대리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후 국내 MRI 프로젝트가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그때 금성사가 가격을 내려 팔았다면 아마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MRI 생산과 수출국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그 이후 지금도 국내에는 그런 고급 의료기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조장희<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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