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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김일성 복음의 허구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45년2월11일 黑海연안 얄타에서 2차대전 승전국 美.英.蘇3개국 정상은「세계분할」을 내용으로 한 엄청난 협정에 서명했다. 협상 추진을 주도해온 프랭클린 루스벨트 美國대통령은 막상 그때 瀕死의 환자였다.그 이전에 이미 하체 마비였지만 회담장에도착했을 때 수행원 팔에 안겨 비행기에서 내린 그는 병색이 더욱 완연했다.실제로 그는 2개월후 사망했다.회담기 간중 서류가방은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았다.당시 혈관발작의 알바레스病으로죽음에 가까이 가있던 그는 협상 판단력이 흐려져 있었다.그렇지만 않았으면 예방할 수 있었을지 모르는 韓民族의 비극은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3者의 손에서 빚어진 韓半島의 冷戰을 반세기동안 집행해온金日成이 사망했다.
그의 죽음에 대해 남쪽에서도 각기 다른 생각으로 아쉬움들을 나타내고 있다.
6.25를 상기할 때마다「쳐부수자 공산당」을 외치는 보수쪽은그의 사과를 들어볼 기회를 잃은데 대해 섭섭하다.
반면「과거는 잊어버리자」는 화해파는 모처럼의 남북협력轉機가 무산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金泳三대통령도 사망 후 상황에 대한 공식적 입장은 아직 직접내보이지 않았지만 회담이 이루어지지 않은데 대해 일단 아쉬움을드러내고 있다.
그러나「만약」을 가상해보자.가령 정상회담이 그의 사망 전에 열렸다고.
金日成의 죽음은 회담기간중 발생했을 수도 있고 직후였을 수도있다.더구나 平壤에서 얘기가 진전돼 서울회담이 열리기라도 했다가 사태가 벌어졌다면.
상상하는 것만도 끔찍한 상황이다.설사 사망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안하무인 高齡의「우상」을 상대로 회담을 진행했을 경우 건강한 분위기가 보장될 수 있었을까.
金日成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美國産 승용차 링컨 컨티넨탈 리무진으로 꾸민 영구차가 平壤거리를 지날 때 北韓주민들은 하나같이몸부림치며 오열했고,방송은『5천년 민족사의 최대비극』이라고 애도했다.지상 최후의 스탈린주의 독재자가 남겨놓고 간 이들은 한마디로 독재의 애처로운 희생자들임이 재확인됐다.20세기 가장 잔혹한 통치자는 히틀러였다.엄청난 숫자의 무고한 목숨을 희생시키고 더 많은 사람의 생활을 교란했다.그러나 그가 세상을 뜨자마자 나치정부는 함께 死滅했다.
스탈린은 달랐다.그가 죽은 것은 40년 전이지만 그 죽음의 종결은 고르바초프 등장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金日成의 경우는 언제가 될 것인가.민족이나 문화마다 죽음의 예식은 다양하지만 그것들이 모두 죽은자에 대한 망각의 절차라는점은 공통적이다.말하자면 死者를 떠나보내는 예식이다.
그러나 金日成은 이를 거부하는 장치를 생전에 마련해 놓고 눈을 감았다.그의 동상과 기념관들은 그의 영구位牌이며, 平壤은 그의 喪廳이며,주민들은 상주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주체혁명 위업의 위대한 승계자」로 선언된 金正日은 기실 祠堂속의 포로다.그리고 그의 遺産으로 남겨진 북한의 국제적 고립,경제난,그리고 그 자신의 대외적 인정 문제는 그가계속 喪廳속에 머물고 있는한 개선되지 않을 것이 다.
과연 그 테두리를 떨쳐버릴 수 있을지,아니면 독재를 강화할 것인지 주목 대상이다.독재가 뿌리를 굳히는 最適온상은 위기의 시기다.북녘땅에 독재가 줄곧 강화돼온 까닭은 그것이 던져주는 미끼 때문이다.「위대한 장래」를 약속하는「복음」이 강력한 유혹으로 작용해온 것이다.
***金正日의 행로 경계 金日成이 죽은 북한은 상당기간 주민에게 미끼와 복음을 더욱 증폭시킬 공산이 크다.
이미 여기에 남한의 일부 운동권도 걸려들어 가당치 않은 傾倒현상을 연출하고 있다.處方箋은 별로 인기가 있을 것 같지 않지만 단순하다.미끼와「복음」의 허구성을 노출시켜 교육시키는 일이다. 운동권의 親北실태를 공개한 朴弘서강大총장의 행동 같은 게바로 그것이다.
민간인도 이런 사실을 파악.공개하는데 공안당국에서는 뭣들하고있었는지 해괴한 일이다.金正日의 행로가 드러나기까지는 최대의 경계심이 최선의 防疫이다.
〈편집국 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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