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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1.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프랑스 파리에서 움직이는 영상을 처음으로 공개한지 내년으로 1백주년.과학적 호기심에서 출발한 영화는 그동안 주도적인 대중예술로 성장하며 인간의 꿈과 희망을대리체험케 해주는 판도라 상자의 역할을 맡아 왔 다.본지는 세계영화 1백주년을 맞아 명화 1백편을 우리의 시각으로 더듬어보는 대형기획물을 마련했다.필진은 할리우드영화에 정통한 소설가 안정효씨와 유럽영화에 밝은 영화배우 윤정희씨로 이들의 눈을 통해 선정되는 새로운「세계명화목록」을 기대해본다.
[編輯者 註] 폴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등장해서 경신하기 전까지 거의 40년동안 흥행수입 신기록을 보유했으며 그냥 GWTW(GONE WITH THE WIND)라는 머릿글자만으로도 전세계적으로 통하던 영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화려한 잔 치」를 연상시킨다.이 영화가 처음 한국에 수입되었던 1957년께는 우리나라가 전쟁의 피폐에서 아직 복구되지 못해(정부에부흥부라는 행정부처가 있었을 만큼)황량하기만 했고,그래서 다양하고 수많은 등장인물이 화려한 옷차림으로 대저택의 무도회에서 춤추는 장면을 보면 그 눈부심에 어린 우리들의 마음은 주눅이 들만도 했다.
퓰리처상을 받은 원작소설과 당시로는 기록이었던 4백만 달러의제작비 덕도 있겠지만 1939년에 만들어진 이 옛날 영화가 그토록 흥행에 성공하고 1967년에는 스테레오 음향에 70밀리 대형화면으로 재보급이 되어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 는 까닭은 뭐니뭐니해도 등장인물들이 지닌 매력 때문일 것이다.
독선적이고 모든 남자를 독점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고,버르장머리 없는 처녀였다가 나중에는 남의 남편이 되어버린 남자를정신없이 쫓아다니던 철없는 스칼렛 오하라.대담하고 세상물정에 밝으며 능글맞기 짝이 없는 미소에 불량기도 적당 히 있어서 처음 만난 자리에서 스칼렛에게 면전에서『당신은 숙녀가 아닙니다(You're no lady)』라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레트버틀러.모든 여성적인 미덕을 집대성해 놓아서 화장실에는 통 안가는 여자처럼 여겨지는 멜라니 해밀 턴.영원히 이루지 못할 꿈속의 사랑을 상징하는 애슐리 윌크스.이 네 주인공이 바로 영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생명력인 셈이다.
특히 두 남자 주인공의 성격을 볼 것 같으면 애슐리는 모든 여자가 낭만적이고 정신적인 연인으로 삼고 싶은 그런 남자이고,레트 버틀러는 결혼해서 같이 살고 싶은 믿음직한 남성상을 그렸다. 그 화려한 성격으로 인해 워낙 탐나는 역이어서 스칼렛 오하라를 선발하는 스크린 테스트를 받은 여배우들은 수전 헤이워드와 조운 폰틴 등 수십명이었는데 조운 폰틴은 멜라니 역을 맡은올리비아 드 하빌렌드와 연년생인 여동생.하마터면 언 니와 동생이 주연을 맡을 뻔했던 이 영화가 휩쓸어버린 10개의 아카데미상 가운데 여우조연상을 받은 해티 맥데이얼은 오스카 상을 받은최초의 흑인,이래저래 GWTW는 갖가지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가 스칼렛(비비안 리)에게『Frankiy,my dear,I d-on't give a damn(솔직히 얘기해서 난 이제 흥미없어)』이라고 말하고는 떠나는데 그 대사에 나오는 damn 이라는 단어가 종교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화다.상황전개를 자막으로 처리하는 무성영화의 수법을 답습한 이 영화는 역시 오래된 작품임을 고려해야 되겠지만 인종 문제와 KKK에 대한 관점 때문에 요즘같아서는 충분히 문제가 될 만하다.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흑인들을 백인이 돌봐주지 않으면 당장굶어죽기라도 할 것처럼 무능력한 인종으로 다루고 심지어는 노예를 해방시키려는 북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흑인 노예들이 전쟁터로 나가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쿠 클럭스 클란에 대한 미첼의 남부적인 시각도 우리들이 생각하는 흑인 린치단체와는 달리 남부의 순수한 문화를 보존하려는 투사들의 단체로 부각되었으며 스칼렛이 그토록 사랑하는 애슐리도물론 KKK단원이다.상영시간이 3시간42분으로 영화 중간에 휴식시간이 있어 구경을 하다말고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는 행사도 당시에는 퍽 신기하게 여겨졌었다.
〈안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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