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추기경까지 흔들자는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김수환 추기경이 요즘 수모를 겪고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 일행이 인사차 방문했을 때 金추기경이 한 발언 때문이다. "나라의 전체적 흐름이 반미.친북 쪽으로 가는 것은 대단히 걱정스럽다" "행정수도 이전이 정말 합리적인지, 아니면 표를 얻기 위해 나온 말인지 묻고 싶다"는 등이 그 핵심 발언이다. 이에 대해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가 칼럼을 통해 金추기경을 비판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물론 金추기경이라고 해서 언론 비판의 성역일 수는 없다. 교황이라도 잘못이 있다면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金추기경의 '반미.친북' 지적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고, 발언에 잘못이 있다면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비판 방식과 내용이 합당해야 한다. 칼럼은 "金추기경의 정치적 발언이 현실을 호도할 뿐만 아니라, 민족의 내일에 '심각한 걸림돌'로 불거졌다"면서 "민주화 운동에서 金추기경의 모습이 '과대평가된 대목이 많다'는 사실을 알 사람은 다 알면서도 침묵해 왔다"고 썼다. 金추기경 발언이 왜 민족의 내일에 걸림돌인지, 어렵던 시절 민주화를 위해 바른말을 했던 추기경의 전력이 왜 폄하돼야 하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비판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몰아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전제요, 독재적 발상이다.

사회의 원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역정에 국민의 존경심이 보태져야 가능하다. 굴곡 많았던 정치환경 탓에 '원로다운 원로'가 없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암울한 시절 한줌의 소금 역할, 한줄기 빛의 역할을 했던 金추기경을 이렇게 흠집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반미.친북 운동이 흔들리기 때문인가. 우리 사회에 그나마 존재하는 마지막 권위를 철저히 부숴야 한다는 좌파 모험주의적 발상에 따른 공세인가.

노선과 시각이 다르다고 무턱대고 수구니, 걸림돌이니 인신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홍위병의 횡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경청할 만한 얘기에는 귀 기울일 줄 아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건전한 사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