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시시각각

우리 시대의 이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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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잘 썼기에 망정이지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 허둥댔으면 어쨌겠나. 가뜩이나 골이 난 임금의 불벼락에 자신의 목이 붙어있나 쓰다듬어야 했을 일이다. 이처럼 가끔 ‘한글이 없었더라면’ 상상해보지만 정말 갑갑하기 그지없는 노릇일 터다. 하는 말과 쓰는 글이 다르니 매사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나 말이다. 말은 우리말로 하면서 글은 영어로 써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그 수고스러움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감칠맛 휘도는 표현에 유머 감각을 더해 ‘조선의 셰익스피어’에 비견되기도 하는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조차 그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연행 길에 중국의 벽돌가마를 보게 되는데 가마 속 벽돌 쌓는 방법을 두고 “내 손으로도 쉽게 함 직한데 형용하기 어렵다”고 안타까워한다. 누구는 “품(品)자처럼 쌓았다”고 하고 누구는 “책갑(冊匣)을 쌓아 놓은 듯하다”고 거드는데 연암에게는 영 성이 차지 않는다. 하지만 연암이 누군가. 이내 특유의 사실주의적 실감 묘사를 풀어놓고 만다.

“벽돌은 죄 모로 세워 방고래처럼 여남은 줄로 하고 그 위에 다시 엇비스듬히 벌려 올려 가마 꼭대기에 닿도록 시렁처럼 걸쳐 쌓아 올린다. 구멍들은 고라니 눈처럼 절로 숭숭 뚫려 불기운이 치오르도록 서로 엉켜 목구멍 같이 화염을 빨아당기게 했다.”

안 봐도 본 듯한 명문장이지만 번역자가 끼어드는 한계는 어쩔 수 없다. 연암이 직접 우리말로 썼다면 문장이 얼마나 더 생생하고 기름졌을까. 셰익스피어가 반대로 ‘영국의 박지원’이 돼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보다 더 많이 읽히는 책이 『열하일기』가 됐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300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아랫것들의 문자’로 천대했던 시대정신이 가슴 아프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날카롭게 꼬집던 선각자 연암마저 예외가 아니니 더 말할 게 없겠다.

시간을 거슬러 오를수록 통증은 커진다. 오늘날 중국의 우리 역사 빼앗기 작업도 진작 우리 문자가 있었더라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자의 음과 훈을 제멋대로 빌려 쓰는 이두(吏讀)가 생겨난 뒤 천 년 동안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탓에 우리 옛 땅 이름을 남의 나라 글자로 시대 따라 관습 따라 이렇게 적고 또 저렇게 적다가 아예 중국 땅인지 우리 땅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돼버린 게 현실 아닌가.

하긴 잘못됐다고 조상 탓만 할 일은 아니다. 세종대왕께서 일찍이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예견하시어(?)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선진적인 문자를 만들어 놓았거늘, 그 덕에 누구나 손쉽고 빠르게 인터넷이나 문자 메시지를 할 수 있는 정보기술(IT) 선진국의 환경이 절로 마련됐거늘, 여전히 한글이 푸대접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이 바뀌어 이제 글은 우리글로 쓰면서 말은 영어로 하는 시대가 돼버렸다. 제대로 된 영어라면 고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원어민도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 단어를 분별 없이 섞어 쓰는 건 또 하나의 이두를 만들어낼 뿐이다. 이미 우리가 우리말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새로운 이두의 늪에 깊이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귀함 속에 소중함이 있는데 귀한 존재가 너무 당연히 여겨져 소중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정보시대의 총아, 한글이 안타까워 몇 자 적어봤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