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수방관 혼란 가중” 비난/4라운드 접어든 김일성조문 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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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상회담 날아갈라 발빼기 급급”/민주 반격 시도,여 일부도 냉가슴
『정부가 김일성의 과거에 대한 태도를 명확히 밝혀라.』
김일성사망후 정작 북한보다 남한이 조문문제로 내부분열로까지 치닫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정부가 뒷짐만 진채 수수방관하자 그 어정쩡한 태도에 대한 비판론이 각계로부터 강력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과 신민당은 이번 조문파동의 1차적 책임이 정부의 침묵에 있다는 지적 속에 김일성관및 대북정책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민자당 일부에서는 이같은 파문이 정부나 청와대가 정상회담에 급급해 김일성의 과거 문제는 언급없이 정상회담이 안 열린 것만『아쉽다』는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이라며 김일성의 과거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명확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은 15일 빌클린턴 미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가 계속 유효하다는 원칙아래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조급함없이,의연하고,신중하게」대처키로 했다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으나 대화를 통한 남북문제 해결이라는 기존 정책기조는 유지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일성 사망후『아쉽다』는 논평이후 처음 소개된 김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내용이야 이미 알려진대로 지만 그 시점 때문에 특히 주목되고 있다.
상중을 가리지 않고 대남비방을 재개한 북한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김대통령은 「대화」를 강조한 것이다.
청와대는『이같은 국론분열의 양상이 심화되는데도 마냥 뒷짐만 지고 있을 참이냐』는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15일 김대통령 주재의 수석회의를 열었지만 이와 관련한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주돈식대변인은 『이의근행정수석이 전남대의 「김일성분향소」설치등에 관해 보고를 했다』고 대수롭지 않은듯 짤막하게 전했을 뿐이다.
○「대화」 계속 강조
청와대 관계자들은『이 혼란상태를 방치할 것이냐』는 지적에 대해『「조문은 안된다」고 이미 밝힌바 있다』『「조문을 목적으로 한 방북자는 검찰이 조사,의법처리한다」고 발표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와관련,한 고위관계자는 그 속사정을「북한」이 지니는 2중성에서 찾고 있다.북한은「적」이자「대화상대」인데 앞으로 벌어질 정상회담을 생각하면 청와대까지 나서서는 곤란하다는 식이다.
이런 논쟁에 개입했다가 문민정부의 이미지나 훼손될 일은 피하겠다는 소심한 계산도 한몫하고 있는 듯하다.그러나 청와대의 이러한 어정쩡한 태도가 김일성 사망직후정작 「난리」가 나야할 북한보다 남한이 홍역을 치르게 하는 원인이라는 힐난이 생겨나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
○…소속의원들의 조문발언 파동으로 여론으로부터 호된 공격을 받아온 민주당은 이번 파동의 1차적 책임이 「정부의 모호한 태도」에 있다며 쟁점방향을 변경하는 것으로 그동안의 수세에서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민주당관계자들은 실제로 이번 파동의 출발과 확산과정에 정부의 침묵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조문파동이 결과적으로 국론분열로 연결돼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게 뻔한데도 야당이 여론의 집중타를 맞자 단기적 재미에 수수방관한 혐의가 짙다는 것이다.
아울러 『조문론은 당론이 아니다』며 말려들지 않으려던 입장에서 『비생산적이며 소모적인 논쟁』(조세형최고위원) 『부질없는 매카시즘적 공격』(박지원대변인)으로 치부하면서 정부쪽에 공격의 초점을 맞춰가고 있다.
민주당은 18일중 최고위원회를 열어 조문파동의 책임이 정부측의 모호한 태도에 있다고 지적하고 정부측에 대북정책과 정상회담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할 예정이다.
○“국론분열 우려”
○…정부가 조문론 파문에 대한 교통정리를 하루빨리 해줘야한다는 주문은 민자당쪽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주로 민정·공화계를 중심으로 『정부의 침묵과 어정쩡한 태도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목청을 높이곤 조기수습을 위해 지금이라도 정부가 명확한 입장표명을 해야한다고 요구한다.
5,6공에 걸쳐 정부 고위직을 역임한 중진의원은 『대통령주변에 정부가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수상한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있어 상황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민주계와 일부 당직자들은 『정부는 가능한 한 침묵을 지켜야 한다』며 정부측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어 민자당내부가 이문제를 둘러싸고 상반된 시각차를 노출하고 있다.〈김현일·박병규·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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