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평화협력지대 설치 … 암초 많은 교묘한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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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6일 "북한이 핵을 가지고 경제를 살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방한 중인 독일 미카엘 글로스 경제기술부 장관을 만나 "남북 관계가 급진적인 변화 시기를 맞은 것이 사실이나 가장 큰 장애물은 북이 핵을 갖고 있는 것"이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이 후보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개방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이 후보는 2007 남북정상선언이 발표된 직후 "국제사회와 국민의 관심사인 핵폐기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쉽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이 후보의 이날 발언 역시 정상선언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다.

그렇다면 이 후보는 남북정상선언의 10개 항(8개 항+2개 별항)에 대해 어떤 구체적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본지는 이 후보에게 남북 관계를 자문하는 고려대 남성욱(북한학).현인택(정치외교학)교수에게 '잘함' '보통' '미흡' '매우 우려'란 4단계로 10개 항을 분석해 달라고 의뢰했더니 정상선언 중 5개 항에 대해 '매우 우려스럽다'고 답변했다.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설치, 공동 어로구역.평화수역 설정, 민간 선박의 해주 직항로 통과 등의 내용이 담겨있는 조항이었다. 각종 경협 프로젝트도 여기에 집중돼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귀국보고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진전된 합의"라고 강조했던 이 항목을 이 후보 측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남 교수는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설치와 관련, "논란의 핵심이었던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시키는 교묘한 합의일 수 있다"며 "영토 문제에 일단 손을 대면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이 후보가 가장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후보는 정상선언 발표 직후 측근들에게 "상당히 정교하고 교묘하게 만들어진 합의다. 문제를 삼기도 어렵고, 그냥 지나가자니 암초도 많다"고 말했다.

납북자.국군포로 문제가 빠진 제7항의 인도주의적 협력 항목에 대해서도 남.현 교수는 모두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11월 중 남북 총리회담 서울 개최'를 명시한 별항의 합의도 "대선 직전 북풍(北風.북한 바람)을 노린 정치적 합의인 듯하다" 는 이유로 '미흡' 평가를 받았다.

사회문화 분야 교류와 백두산 관광 실시를 담은 제6항과 국제무대 협력을 강조한 제8항에 대해선 '잘함', 나머지 5개 항에 대해선 '보통' 평가가 나왔다.

이 후보 측 자문교수들은 "평가엔 여러 잣대가 있지만, 이 후보로선 차기 정권을 얼마나 속박하느냐가 평가의 큰 기준"이라며 "현상 파괴적인 제5항에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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