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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만 400대인 PC방 ‘불야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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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지시 원항상무대하에 자리 잡고 있는 옌지 최대의 차얼스 PC방.

이코노미스트 옌지시 원항상무대하 2층 차얼스 PC방.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전 층이 PC방이다. 천장에 바싹 붙여 걸어 놓은 현수막엔 “완벽하지 않은 서비스는 있어도 완벽하지 않은 고객은 없다”란 표어가 걸려 있다. PC 424대를 보유한 이 옌지 최대의 PC방은 옌볜차얼스네트워크과학기술유한회사가 운영하는 PC방 체인이다.

옌볜차얼스는 옌지시에 33곳, 옌지를 비롯해 옌볜조선족자치주 전역에 40개의 체인점을 두고 있다. PC 보유 대수는 각각 120~300대. 점포당 하루 5000~6000위안(60만~72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원항대하 차얼스의 하루 이용자 수는 2000~3000명. 한번 찾으면 보통 2~3시간씩 머무른다. 시간당 요금은 2~3위안(240~360원). 고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콘텐트는 영화·게임·인터넷·채팅 등 다양하다.

먼리원(24) 총경리에게 ‘영업이 잘 되느냐’고 묻자 “PC방 간 경쟁이 치열해 지금 시작한다면 옌지 말고 다른 도시에 가서 할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옌지는 IT 도시로서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옌볜에서 영화관이 쇠퇴하고 있는 것도 PC방의 성행과 무관치 않다. 90년대 초까지 단체 관람으로 명맥을 이어오던 영화관은 영화 소비가 개인화하면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비디오 대여점도 큰 타격을 입었다.
먼 총경리에 따르면 옌볜 PC방 이용자 중 절반은 조선족 교포들이다.

인구(38%)에 비해 이용도가 높은 것은 영화 등 한국산 콘텐트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한족은 번역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교포들은 그런 과정 없이 한국 콘텐트를 곧바로 수용할 수 있다. 한글 콘텐트의 공급이 PC방에 대한 교포들의 수요를 창출한 격이다.

교포들은 한국 사이트를 수시로 드나들다 보니 인터넷에도 능하다. 원항 차얼스에서 만난 조선족 교포 송효연(19)씨는 “조선족은 이중언어를 하기 때문에 컴퓨터를 더 많이 이용한다”고 말했다.

기업형 PC방 성행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주도 옌지는 지금 IT 도시로 변신하려 하고 있다. 동북3성의 IT 거점을 꿈꾸고 있다. 그 단초가 경제개발구 애득자동차매매센터에 자리 잡은 IT밸리. 이곳엔 외국 기업 26개를 비롯해 31개 IT 기업이 입주해 있다. 상근 인원은 1200여 명에 이른다.

네이버 옌지센터도 이곳에 있다. 네이버 쇼핑몰에 입주해 있는 1600개 업체의 상품 사진을 여기서 올리고 있다. 제2회 옌지국제투자무역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옌볜국제회의전시센터에서 만난 최상필 의화태 애니메이션 프로덕션 항목경리는 “옌지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하기에 적지”라고 말했다.

“중국의 고전, 중국어 학습용 애니메이션을 한국 기업과 합작해 제작할 수 있습니다. 원작의 발굴과 애니메이션 제작은 중국 측이, 시나리오 작업은 한국에서 맡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중국·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시장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조선족 교포인 그는 애니메이션 제작 일감은 이미 미국에서 한국을 거쳐 99년부터 옌볜으로 넘어왔다고 말했다. 조선족 교포들이 한국 쪽과 의사소통이 되는 데다 손재주가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족 간 합작은 한류에 대한 반감을 돌파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중국 콘텐트 시장에 진출하려면 앞으로 제작을 중국에서 하는 게 유리하죠. 작품을 선정할 때도 중국의 정서에 거슬리지 않는 것을 고를 수 있고요.”

옌볜과기대 출신인 베이징 LG전자유한회사 김호남 부장도 IT·물류사업·교육과 더불어 애니메이션을 한국 기업이 옌볜에서 벌일 만한 사업으로 꼽았다. 애니메이션 산업이 발달한 일본·한국 기업과 조선족 교포들이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한수 옌볜과기대 교수(경영정보관리학과)는 “경제개발구는 물론 중앙정부와 각급 지방정부들도 옌지의 IT 도시화에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옌지는 지금 공사 중”이라고 강조했다. 전 도시에서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것.

또 옌볜대·옌볜과기대·옌볜과기대 부설 IT 교육원 등에서는 IT 인력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양성된 인력이 현재는 베이징 등 대도시의 일본·한국 기업에 취업하고 있다.

김한수 교수는 환경만 조성되면 옌볜과기대 출신을 비롯해 중간관리자급으로 귀향할 조선족 교포들이 꽤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으로서는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는 거죠. 한국이 부족한 부분을 이곳에서 보완하는 겁니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다면 가령 이동통신 부가서비스를 개발할 때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할 수 있죠. 인적자원양성기지, R&D센터를 둘 수도 있습니다.”

조철학 옌지시장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중국 정부가 옌지시를 중한(中韓) IT 합작기지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옌볜대 서쪽에선 100만 평 규모의 IT 타운이 태동 중이다. 옌지시는 지난 8월 28일 IT 타운의 개발·관리를 맡을 OCO코리아주식회사와 MOU를 맺었다. 유대진 옌지IT밸리유치관리위원회 회장(옌지경제개발구관리위 주임조리)은 “다롄을 모델로 도시계획을 설계 중인 IT 타운에 한국과 일본 기업을 유치하겠다”고 말했다.

“부지 가격과 건물 임대료가 싸다는 게 가장 유리한 조건이죠. 식당·유흥업소·공원 등의 편익시설도 제대로 갖출 겁니다. 한국 기업들은 북한 변수를 중시하는데, 북핵 문제도 해결돼 가고 있고 남북 정상회담도 잡혀 있어 그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좋아요. 현대아산을 통해 북한의 IT 인력도 조달할 겁니다. 북한 IT 인력은 옌볜보다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옌지시가 보증을 서면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북쪽이 요구하는 북한 인력의 인건비 수준은 부대 비용을 포함해 옌지의 3분의 2 수준인 월 2000위안(24만원)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10분의 1, 베이징의 3분의 1 수준이다.

양철형 금호연건개발유한회사 총경리도 “북한 IT 인력의 질이 중국에 비해 낮지 않다”고 말했다.

“인력은 우수한데 공장이 없어 북한에 아웃소싱을 못하는 거죠. 북의 우수한 인력을 뽑아 쓰는 건 가능할 겁니다.”

북한 IT 인력 활용 복안도

중앙일보는 최근 김일성종합대·김책공대를 졸업한 북의 우수한 인력이 베이징·다롄의 한국 기업과 교포 투자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이징의 한 대북 사업가는 이렇게 일하는 북한의 IT 인력이 30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LG의 한 관계자는 지난 2월까지 LG CNS가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고용한 북한 IT 인력에 월 1000달러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중국 국무원 동북진흥판공실은 지난 8월 20일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북 지역을 4대 경제권으로 육성한다는 동북진흥계획을 발표했다. 랴오닝·지린·헤이룽장 등 동북3성과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동부 지역을 대상으로 한 이 계획의 골자는 이 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2010년까지 2002년의 2배 수준인 2만1889위안(약 263만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

광둥성 선전의 주장경제권, 상하이·저장성·장쑤성의 창장경제권, 베이징·톈진·허베이성의 수도경제권에 이어 동북 지역을 제4대 경제권으로 가꾸겠다는 야심 찬 청사진이다. 이에는 동북 지역을 아시아의 물류 허브로 키우는 전략이 포함돼 있다. 이를 위해 철도·고속도로·공항 등 인프라와 IT를 기반으로 하는 정보화 프로젝트에 대대적인 투자를 할 계획이다.

옌볜과기대 김한수 교수는 “옌볜은 IT 기업을 유치하는 한편 중국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다국적기업과 한국에 진출하려는 중국 기업의 IT 허브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렇게 해서 옌볜 지역경제를 발전시키고 조선족 사회의 공동화를 막아야 합니다. 또 그럴 때 옌볜이 첨단 산업기지화 함으로써 동북아경제공동체의 거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부족한 IT 인력은 비전산 전공의 조선족 대졸자들을 IT 인력화하는 전환 교육과 전문대 졸업자들에 대한 집중적인 IT 교육을 통해 충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옌볜과기대 출신인 김호남 부장은 IT 도시란 옌지의 비전에 대해 “옌지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원가가 적게 들고 투자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양철형 총경리는 그러나 “옌지가 IT 거점 도시가 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IT 제품 시장성엔 한계

“인력·시장·기술·정책 등이 변수인데 시장성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옌볜의 IT 제품을 베이징에서 사려고 하겠습니까? 옌볜의 지역적 한계랄까요. 그러나 연구개발의 거점은 될 수 있겠죠.”

그는 금호연건도 옌지 공장을 연구훈련센터로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량생산하는 연구소의 입지로서는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옌지는 다른 대도시와 비교해 통신·교통 면에서 불리할 게 없고 비용도 적게 든다. 무엇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연구에 임할 수 있다.

“언어 장벽 없겠다, 연구원들이 외국에서 살 때 받는 스트레스가 적습니다. 옌지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향수병을 모르죠.”

그는 경험과 무형의 노하우를 통역을 통해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IT 기술은 도면에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유대진 회장은 IT 타운에 기업을 유치하는 데는 옌볜의 낙후 지역 이미지, 남북관계 등이 여전히 복병이라고 말했다.

양철형 총경리는 기업을 유치하는 데는 외국 기업에 대한 정책적인 우대가 긴요하다고 귀띔했다.

그는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산둥성 웨이하이시 정부가 취한 조치를 예로 들었다. 웨이하이시 당국이 “한국 기업인들에게 여권을 소지하는 한 현행범일지라도 살인범을 제외하고는 불구속 수사를 하겠다”고 천명했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어느 나라에 진출하기로 마음먹으면 어느 지역이든 별 차이 없습니다. 필요한 인프라도 직접 깔 수 있어요. 더욱이 오너 마음인 중소기업은 살기 좋은 지역으로 가게 마련이죠.”

김호남 LG전자유한회사 부장은 장래를 위해서도 한국 기업과 조선족 사회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족 교포들은 한국 기업을 통해 10~20년 앞선 정보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5년은 앞서갈 수 있죠. 그러나 지금은 조선족이 한국에 의존하고 있지만 한국의 위상도 바뀔 거예요. 한국인들이 중국 기업에 취직해야 하는 상황을 상정해 볼 수도 있죠. 그런 날을 내다보고 서로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이승목 엑스워드닷컴 사장

“옌볜은 한국 기업 테스트 베드 될 수 있어”

“옌지시는 한국 기업들에 커뮤니케이션 장벽이 없는 중국의 유일한 도시죠. IT 업종에서 제일 중요한 게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옌지가 취약한 게 물류인데, IT는 물류와도 별 상관이 없죠.”

지난 4월 옌지경제개발구 IT 밸리에 입주한 엑스워드닷컴의 이승목 사장은 “옌지를 거점으로 엑스워드닷컴의 모델을 중국에 이식하겠다”고 말했다.

엑스워드닷컴은 중소기업을 위한 기업 포털. 신뢰성 있는 정보를 기업과 전문가에게 제공하고 있다. 법률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로마을’은 경쟁관계에 있는 4개 사이트 중 법조인 순 방문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로직만 제공하고, 여기서 중국에 맞게 코딩을 하고 중국에 맞는 콘텐트도 개발할 겁니다.”
엑스워드가 개발한 솔루션 사이드큐를 기반으로 전 세계 전문가들의 연합체를 구축하는 것이 이 회사의 비전이다.

-IT 비즈니스를 하기에 옌지시의 환경이 어떻습니까?
“옌볜은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에 테스트 베드가 될 수 있습니다. 옌지시는 웹 환경도 좋은 편이죠. 인터넷 망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결정적인 걸림돌은 아닙니다.”

-IT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옌지가 보완할 점은 뭔가요?
“백업 시스템이 불안하고 서버 트래픽 망을 관리할 전문 인력도 부족해 보입니다. 이런 기술 지원 문제는 잘 드러나지 않죠. 그러나 인도의 벵갈루루 같은 IT 거점이 되려면 주정부·시정부 차원에서 기술 지원이 완벽해야 합니다.”

-옌지시가 과연 IT 거점 도시가 될 수 있을까요?
“IT 도시가 되겠다는데 총론만 있고 각론이 잘 안 보입니다. 고신기술을 강조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IT가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더 맞는 산업인 건 인정해야죠. 기업 입장에선 옌지 쪽이 비용 효과가 더 크더라도 기업 이미지를 고려해 베이징·상하이·선전 등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하드웨어·소프트웨어만이 IT가 아니라는 거예요. 장비 제조, 소프트웨어 개발만 바라보지 말라는 겁니다.”

-옌지에서 할 만한 IT 비즈니스로는 뭐가 있나요?
“지금이라도 블루 오션을 찾아내거나 옌지 실정에 맞는 품목, 즉 미들웨어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미디어 분야죠. 미디어 쪽엔 블루 오션이 많습니다. 언어별로 제품의 동영상을 찍는 일이 한 예죠. 그러자면 미들웨어 적인 일을 옌지에서, 동북3성에서 찾아야 합니다. 옌지에 걸맞은 IT 업종을 찾아낼 때 그 과정에서 블루 오션도 창출될 수 있습니다. 해외고객지원센터를 옌지에 둘 수도 있죠.”

<이코노미스트 908호>

글·이필재 편집위원/사진·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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