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무더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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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구에서 사과가 생산되지 못한다.제주도가 준열대지방으로 변해 바나나·파인애플 같은 과일이 야외에서 생산된다.부산·광주같은 곳에선 야자수가 가로수로 등장한다.
지구 온난화현상에 따라 예상되는 약 30년후의 모습이다.연평균기온이 섭씨 2∼3도 가량 높아진다는 얘기다.이산화탄소의 증가가 그 원인으로 해수면이 약 20㎝ 높아져 곳곳에서 해안침수가 일어나는등 전체적으로 생태계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 예상되기도 한다.
기온의 급격한 상승에 따른 이같은 변화는 예견되는 것이기 때문에 미리 대책만 마련한다면 크게 심각한 일이 못될는지도 모른다.보다 심각한 문제는 사람의 건강과 성격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특히 살인적 무더위가 계속되는 경우 인성이 복잡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여러차례의 임상실험 결과로도 입증된바 있다.우선 이유 모를 불안감에 빠지고 불쾌감이 높아지며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심리학자들은 이같은 현상을 무더위로 인한「심리적 발작증세」라 부르기도 한다.
더울수록 정신병원 입원환자가 늘어나는 것도 그 까닭이라는 것이다. 무더위가 집단 히스테리를 유발한다는 심리학자들의 견해도 흥미롭다.사람들이 제각기 느끼는 더위의 무게가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되면 느껴지는 더위가 배가되고,이것이 널리 확산되는 경우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게 된다는 얘기다.동물도 마찬 가지로 닭·돼지등 가축들이 찜통더위 속에서 집단 폐사하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라고 한다.그렇게 보면 김일성이 사망한 후 북한주민들이 보인 광란적 집단 히스테리 현상에 무더운 날씨가 한몫 거든 것은 아닐까.
12일 대구지방 낮기온이 17년만에 최고인 39.4도를 기록하는등 전국이 한증막을 방불케 하는 이상 고온현상을 보였다.가축들이 집단 폐사하는가 하면 탈진환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한다.아직 집단 히스테리 증상까지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더위를 자기만의 것으로 간직하는 지혜가 필요할는지도 모른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복날 개나 닭을 잡아먹는 풍습도 무더위로 인한「심리적 발작증세」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가운데 하나라는 견해가 있고 보면 삼계탕이나 보신탕으로 땀을 흠뻑 흘리며 짜증을 달래보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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