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사망,휴전선인근 실향민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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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金日成이 죽었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죠.오히려 이럴때일수록 국민 모두가 차분하게 앞으로 상황을 잘 지켜봐야할 것 아닙니까.』 태풍의 중심지는 오히려 조용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듯 가까이 북녘땅이 바라다뵈는 서부전선 최북단 민통선 마을이자 전체 95가구중 90가구가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경기도파주군군내면백연리「통일촌」주민들은 북한金日成의 뜻밖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9일오후 오히 려 더 차분한모습이었다.
86년 金日成의 거짓 사망설이 나돌때만해도 하루종일 장송곡등으로 극성을 떨었던 대남방송도 이날만은 들릴듯 말듯한 소리로 장례위원회 명단만을 되뇌었고 인근부대들에서도 별다른 지시가 없어 우리측 TV방송이 없었다면 마을안에서 아무도 그의 사망 소식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조용했다.
다만 다른 것이 있었다면 해질 무렵 이 마을 주민 李龍培씨(36)의 집에서 이날「즉석토론회」가 열렸다는 것이다.
이 마을 반장인 金炯載씨(36)를 비롯,5~6명의 주민들이 평소보다 일찍 밭일을 마치고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향후 남북관계의 전망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는 자리를 가졌다.
나오는 이야기는 여럿이었으나 결론은 바로 눈앞에서 정상회담이무산돼 평화통일의 꿈이 또 다시 멀어지지 않을까하는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나 휴전선에서 멀어질수록 金日成 사망이 불러일으킨 파동은 다소 커졌다.
경기도파주군문산읍.이곳은 6.25전쟁 이후 1천5백여명이상의실향민이 통일이 되면 한시라도 빨리 고향땅을 밟기 위해「제 2의 고향」으로 뿌리를 내린탓에 불과 하루전만해도 귀향과 남북화해의 기대로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던 곳.
金日成의 사망소식 이후 상황이 급전,읍내는 팽팽한 긴장감에 싸였다.그러나 성숙한 시민의식을 반영하듯 혼란은 없었다.다만 문산읍내 버스터미널이 급히 부대에 복귀하려는 30~40여명의 군인들로 약간의 혼잡을 이루고 읍내의 파주경찰서 산하 문산파출소도 행여나 발생할지도 모를 긴급사태에 대비하려는듯 비상대기중인 직원들이 전화 또는 무전기로 군부대와 계속 연락을 취하는등의 상황이 눈에 띄었다.
남북정상회담 타결 이후 발디딜 틈없이 북적대던 임진각에는「金日成사망」급보가 전해지자 주말인데도 평상시의 3분의 1수준으로관람객이 줄어 남북화해무드의 냉각 분위기를 반영했다.
실향민 金基弘씨(68.경기도파주군문산읍문산3리)는『고향땅을 밟을 날이 가까워온 것 같아 설레는 마음에 밤새 며칠동안 잠을이루지 못했는데 金日成의 사망으로 귀향꿈이 또 다시 좌절된 것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서부전선에서와 마찬가지로 동해안 최북단인 고성군지역에서도 주민들은 놀라움을 나타냈지만 별다른 동요없이 평온한 모습이었다.
나흘간 조업을 나갔다 이날 오후 입항했다는 어부 李貴植씨(45.고성군거진읍)는『입항하자마자 주위 사람들로부터 金日成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며『국민 각자가 생업에 열중하면서 사태를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함남북청이 고향인 趙一郎옹(78.속초시청호동)은『金日成의 사망으로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돼 살아생전 가족재회는 영영 틀린 것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북한주민이 신격화해온 金日成이 사망하고 체제기반이 약한 金正日이 정권을 잡게되면 내부분열등으로 오히려 통일을 앞당기는 호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汶山=表載容.金俊賢,高城=洪昌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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