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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의펜화기행] 엽서 덕에 풀린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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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면

1920년대 통도사 범종각과 만세루, 종이에 먹펜, 36X50cm, 2007

2002년 초부터 1년6개월 동안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살았습니다. 펜화로 캘린더를 만드는 소임을 맡아 법사실에 살림을 차린 것입니다. 전생에 어떤 공덕이 있어 스님도 배정받을 수 없다는 법사실에 살게 되었을까요? 기도를 많이 하였다는 스님이 “영산전 팔상탱(八相幀·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장의 그림에 담은 불화)을 그린 유성(有誠) 스님이 당신의 전생이었네”라고 하더군요. 조선 최고의 불화가인 유성 스님이 그린 통도사 팔상탱은 보물 제1041호입니다. 색채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에서 불화뿐만 아니라 한국화 중에서도 비교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이런 전생의 화력이 있어 현생에서 세밀한 펜화를 그리나 봅니다.

 통도사 법당들을 펜화로 그리면서 만세루(萬歲樓)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다른 절의 만세루는 벽체가 없는데 통도사 만세루만 4면 모두 벽으로 막혀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궁금증은 얼마 전 인사동 골동품가게에서 만난 사진엽서로 풀었습니다. 1930년대 까지만 해도 만세루 전면에 벽체가 없었던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현재의 통도사 범종각·만세루

사진엽서에 담긴 범종루는 현재의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기둥과 지붕을 받치는 활주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숙종 12년(1686) 수오대사가 세운 범종루는 중수한 기록이 없습니다. 사진엽서의 목재 상태를 보면 초창기 때 목재로 보입니다. 현재 범종루는 난간을 계자각 난간으로 바꾸었고 단청을 입혀 화려해 보입니다. 88년 1만5000근짜리 범종을 추가로 달았고, 법고와 목어도 하나씩 더 달았습니다.

 2003년 캘린더를 펜화로 만들었고, 2004년 캘린더는 영산전 팔상탱의 훼손된 부분을 컴퓨터로 복원하여 만들었습니다. 현생의 작품과 전생의 작품으로 캘린더를 만들어 본 작가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김영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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