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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서>벗기기 연극의 예술적 포장-극단 판 다까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연극에서의 벗기기는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외설인가.
연극계의 이 해묵은 논쟁에 대해 극단 판이 명동엘칸토극장에서공연중인 『다까포』(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라는 음악용어)는 얼마간의 해답을 제공한다.
이 연극은 환경재생과 新羅설화「선덕여왕과 지귀」를 교직해 주제로 삼고 아내의 외도,호모.레스비언의 성행위,오렌지족들의 작태등 우리사회의 크고 작은 병치레 모음을 콩트로 엮어 삽입한 전위실험극.
여기에는 6명의 남녀배우가 전라로 출연한다.배우들은 관능적인몸짓으로 무대를 기어다니거나 뛰어오르고 함께 포개져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른바 자연주의 기법을 활용한「환경연극」이라지만 1시간30분동안 한마디 말도 없이 속살을 드러낸채 꿈틀거리는 배우들의 동작 하나하나는 그대로 에로티시즘의 극치를 보여준다.
훌라후프에 비닐끈을 길게 늘어뜨려 만든 속이 훤히 보이는 임시 차단막속에서 완전히 벌거벗은채 서로를 애무하는 남자끼리,혹은 여자끼리의 무대장면은 삼류 쇼무대의 라이브쇼를 연상케할 정도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뒤 관객들의 반응은 에로티시즘 연극과는 거리가 멀다.
뭐가 뭔지 모를 난해한 이론서 한권을 대한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뭔가 있는 듯한 극의 분위기 때문에 성적 욕구를 자극받기 보다는 오히려 감성적.지적 욕구를 자극받았다는 얘기다.
똑같이 무대에서 배우가 옷을 벗더라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관객에게 주는 감동과 느낌은 크게 달라진다는 점을 이 연극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학로에서 공연했거나 공연중인 일부 지방극단의 에로티시즘 연극이 당위성도,예술성도 없이 무조건 벗기는데만 급급해 본래의 목적(?)인 성적 욕구 자극에도 실패하고 마는 것과 비하면 극단 판의『다까포』는 보다 고차원적인 벗기기로 주제 전달과관객동원,두마리 토끼잡기에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극단 판의 대표 崔강지씨 스스로도『어차피 상업성을 배제한 대중예술은 존재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며 이 연극의 벗는 이유가흥행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인정한다.
결국 『다까포』는 흥행이냐,예술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많은 연극인들에게「예술적 포장」이란 하나의 유력한 탈출구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李正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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