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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내 어린시절의 기억에 아버지는 몇 장면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내게 바이올린을 사주던 아버지 말고는 짧지만 아주 무서운 표정을 하고 내게 단단히 약속을 받아내던 아버지가 생각날 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의 어머니는 아주 엄했다.한번은 누군가 뒷마당에서 불장난을 한 흔적을 어머니가 발견하고 나를 다그쳤다.왜그때 어머니가 유독 나를 지적하면서 그렇게 조졌는지는 알수 없는 일이었다.아마도 누군가 엉터리로 어머니에게 고 자질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어머니는 나를 골방으로 끌고가서 매우 쳤다.어머니는 하여간 그 불장난의 범인이 나라고 확신하고 계셨다.나는 모르는일이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내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어머니는 내게 사실대로 불면 용서해주겠다고 했다.그러면서 내가 사실대로말할 때마다 회초리를 휘두르시는 거였다.불장난보다 더 나쁜게 거짓말이라고 어머니는 그러셨다.정말이지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다. 나는 억울했지만 일단 살아남는 길을 택했다.나는 거짓 자백으로 위기를 넘겼다.
그날 저녁 나는 아버지에게 낮에 당한 억울한 일을 모두 고해바쳤다.(그즈음에는 웬일인지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모든 사정을 알고 나면 어머니를 몹시 야단칠 것이고,그러면 어머니가 결국 내 궁둥이를 두들 기면서 내게사과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였다.아버지는 내 말을 다 듣고 나서 아주무서운 얼굴을 하고 나를 혼냈던 거였다.
『매가 무서워서 그랬다구?』아버지는 내 말에 몹시 실망했다는표정을 하고 말했다.『달수야,안한 건 안한 거야.매한테 지는 아들은 내 아들이 아니야.알겠니?』 아버지의 말에 나는 무조건고개를 끄덕이면서도,아버지라도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라고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하여간 어린날의 우리 형제에게 어머니는 대단히 무서운 존재였다.그리고 나는 아주 착하고-정말이다-양같은 막내아들이었다.형과 내가 나란히 엄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를 반복하던 꼬라지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나 선명한 그림인 거였다.
한번은 내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였는데,어머니가 당신의 친구들에게 나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내용인즉 우리 형제가 꼬마였을 때,어머니는 형이 뭔가를 어지간히 잘못해도나 때문에 형을 야단칠 수가 없었다는 거였다.왜 냐하면 형을 야단치려고 불러서 앉히면 아무 죄도 없는 내가 형 옆에 꿇어앉아서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고 하도 간절하게 빌기때문이라는 거였다.그러면 어머니는 속으로 하도 웃음이 치솟아서형을 더이상 야단치지 못했다는 이 야기셨다.
어머니의 그 이야기는 사춘기 시절의 나를 몹시 화가 나게 했다.왜냐하면 어머니는 우리를 야단칠 때 단 한번도 웃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나는 공포 속에서 떨고 있었는데,그런데 알고보니 속으로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는 거였다.나 는 형에게도 화가 났다.나는 그렇게 어려서부터 의리를 지켰는데 요즘의 형은아무 것도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거였다.
형은 내게 진 빚을 갚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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