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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영장 거부는 사법권 침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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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02년 당내 대통령 후보경선과 관련,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민주당 한화갑(韓和甲.65)의원에 대한 수사 정당성과 구속영장 집행을 놓고 검찰과 민주당이 정면 대립하고 있다.

검찰은 1일 아침부터 자정 무렵까지 여섯차례나 민주당사 진입을 시도했으나 민주당 당직자들의 실력저지로 끝내 영장집행에 실패했다.

민주당은 "총선을 앞둔 시기에 당 경선자금에 대한 수사는 편파적"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검찰은 "韓의원이 SK 손길승 회장에게 직접 경선자금 지원을 요청, 처남을 통해 4억원을 현금으로 받은 혐의가 드러나 영장을 청구했다"며 편파수사 의혹을 일축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이미 구속기소된 정대철 의원에게도 하이테크하우징으로부터 경선자금 1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적용된 만큼 민주당 내 경선자금 수사는 韓의원이 처음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불법 대선 자금이든, 불법 경선 자금이든 해당 정치인이 불법 자금을 받는 과정에 개입한 정도와 금액이 중요한 사법처리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韓의원과 민주당이 편파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당원들을 동원해 검찰의 영장 집행을 막는 것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사법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현역 의원의 영장집행 거부는 헌정사상 처음이다.

대한변협 박재승(朴在承)회장은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판사가 적법 절차를 거쳐 발부했는 데도 영장 집행을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공무집행 방해'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도 "일단 판사가 영장을 발부한 이상 그에 따르는 것이 마땅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법적 절차에 따라 주장하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도리"라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 수뇌부는 韓의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놓고 상당히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수사팀에서는 韓의원의 혐의를 확인한 뒤 원칙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면서 "그러나 韓의원이 김대중 정권의 실세였던 데다 서울 출마를 선언한 상태라 곤혹스러웠다"고 말했다. 즉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韓의원을 사법처리할 경우 검찰이 열린우리당을 도와주려고 한다는 정치공세에 시달리는 것을 염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뇌부는 "정치적 고려보다는 韓의원의 혐의가 무거운 데다 이미 구속된 다른 정치인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구속영장청구를 승인했다고 한다.

한편 검찰의 영장 집행에 불응하고 있는 韓의원의 행태는 지난주 구속수감된 한나라당 서청원 의원과 크게 대비된다. 徐의원은 한화그룹에서 10억원짜리 채권을 받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지난달 28일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이어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자 구속수감됐다.

그러나 韓의원은 수사과정에서 "책임을 지겠다. 실질심사에도 나오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영장 실질심사는 물론 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韓의원의 약속을 믿고 29일 귀가시킨 뒤 30일 오후에 잡혔던 실질심사도 31일로 연기해주기까지 했다.

조강수.전진배 기자<pinejo@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사진설명전문>
1일 밤 민주당 한화갑 전 대표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를 찾은 검찰 직원들이 강운태 사무총장, 유용태 원내대표, 김경재 의원(왼쪽부터) 등 당직자들에게 협조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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