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남북 정상회담 '2000년 첫날' 과 비교해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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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은 없었다=썰렁한 만남이었다. 2일 낮 12시2분 모란봉구역의 4.25 문화회관 광장에 노무현 대통령과 북측의 명목상 국가원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탄 벤츠 컨버터블 리무진이 도착했다. 7분 전부터 4.25 문화회관 광장 입구에서 고개를 젖힌 채 기다리고 있던 김정일 위원장은 노 대통령 내외가 다가오자 옅은 미소를 띠며 "반갑습니다"라는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DJ를 만나 두 손을 감싸 안으며 악수했던 것과 달랐다. 공산주의 국가 지도자들의 인사 방식인 포옹도 없었다.

7년 전 순안공항에서 DJ에게 건넸던 "힘든, 두려운, 무서운 길을 오셨다"는 감성적인 인사말도 없었다. 절제된 외교적 접대로 비쳤다. 김 위원장은 북한 육.해.공군 의장대의 사열이 끝난 뒤 남측 수행원들과 차례차례 악수했다.

◆네 살 차이 두 정상=노 대통령이 무개차에서 내려 10여 걸음을 내디뎌 다가가는 동안 김 위원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표정은 덤덤했다. 2000년 순안공항에서 보여 줬던 환한 웃음과 방문자에 대한 환대의 격은 떨어졌다.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과 함께 사열대로 걸어갈 때도 표정을 풀지 않았다. 말도 건네지 않았으며 눈도 맞추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북한 육.해.공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을 때까지 이어졌다. 노 대통령의 표정도 약간 굳어졌다. 김 위원장의 걸음걸이와 표정에서는 활기가 드러나지 않았다. 김 위원장(65세)은 노 대통령(61세)보다 네 살이 많다.

◆차량 동승 없었다=두 정상은 환영식이 끝나자 거리에 운집한 인파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며 퇴장했다. 노 대통령이 먼저 전용 차량인 신형 벤츠600을 타고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했다. 김 위원장도 자신의 구형 벤츠600을 타고 떠났다. 2000년 6월 순안공항에서의 환영 행사 뒤 전격적으로 이뤄진 '깜짝 동승'은 재현되지 않았다. 당시 DJ와 김 위원장의 깜짝 동승은 파격인 동시에 큰 파장을 불렀다. 국내에선 "대통령에 대한 경호는 물론 군 통수권자의 지휘 공백이 생겼다"는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선 "다시 백화원 영빈관에 나타나기까지 57분 동안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DJ는 서울로 돌아온 뒤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을 만났다. 올브라이트는 이때 "(김정일과 동승한)차량 안에서 어떤 얘기를 나눴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였다.

◆122분에서 12분으로=노 대통령은 2일 김 위원장과 12분간 만났다. 4.25 문화회관에서의 환영식이 전부다. 김 위원장은 2000년 차량에 동승해 DJ를 백화원 영빈관까지 안내했지만 이번에는 환영식장에서 헤어졌다. 2000년 6월 12일에 두 정상이 함께한 시간은 122분. 순안공항에서 10분, 차량 동승 57분, 백화원 영빈관에서 55분이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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