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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김두우가 본 정치 세상] 노회한 JP, 잠자는 자민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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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흔히 2002년 대선으로 3金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17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깝다는 표시를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 않은가. '안풍사건'의 본질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선 잔금 또는 당선 축하금이었는지, 안기부 예산이었는지 논란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 총선에도 양金씨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셈이다. 여기에 3金씨 중 한 사람인 김종필(金鍾泌.JP) 자민련 총재는 아직 정치 일선에서 물러날 낌새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30대 초반에 5.16 주도세력으로 나선 지 40여년, 권력의 2인자 또는 국무총리와 정당 총재를 몇 차례씩 거친 노정객 JP는 왜 온갖 수군거림을 외면한 채 아직도 정치판에서 서성거리고 있을까. 다른 당에선 10년 이상 연하인 최병렬.조순형씨가 대표를 맡고, 손자뻘인 30~40대 신진들로 물갈이가 한창 진행 중인데도 말이다. 내각제에 미련이 남아서일까, 3金씨 중 자기만 대통령을 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이렇게 초라하게 떠날 수 없다는 오기 때문일까, '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금배지를 달고 있을 것'이란 참언을 믿어서일까. 혹은 그의 노욕(老慾)때문인가.

설날을 전후해 JP와 자민련에서 벌어진 해프닝이 해답을 줄 수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 1월까지 조부영.정우택.정진석 의원 등이 JP를 찾아가 총선 전 전당대회 개최와 JP의 2선 후퇴를 건의했다. 정상천 전 의원은 연초 방일(訪日) 중이던 JP를 일본에까지 찾아갔지만 설득에 실패했다. 그런 JP가 민주당 조순형 대표의 전격적 대구 출마선언 등에 자극받아 설 연휴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등 고민했다고 한다.

JP는 설날 오후 김학원 총무를, 다음날엔 이봉학 총장을 불러 "전국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를 소집하고 조기 전당대회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그는 나흘 뒤인 27일 "내가 전진대회 준비하라고 했지, 언제 전당대회 준비하라고 했느냐"고 말을 바꾼다. 김종기 총선특위위원장과 유운영 대변인 등 '왕당파'와 '낮엔 개혁파 밤엔 왕당파'라는 한 의원이 "지금 퇴진하시면 당이 무너진다"고 JP의 마음을 흔든 결과였다.

이런 변화를 모른 채 29일 충남 유성에 모였던 지구당 위원장들은 JP의 2선 후퇴를 요구했지만 먹힐 리가 없었다. 지구당 위원장들의 작은 반란조차 유대변인의 '의도된 침묵' 탓에 서울에는 알려지지도 않았다.

찻잔 속 태풍은 이렇게 끝났다. 실낱 같은 희망을 가졌던 자민련의 상당수 의원과 당직자는 허탈감에 빠졌다. 그들은 JP의 노회한 김빼기 작전에 또 한번 놀아난 것인지도 모른다. 심대평 충남지사는 "대전.충남에선 자민련에 실망감이 크지만, JP를 배신한 사람들이 발 붙이기도 어렵다"며 'JP의 대안'이기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렇다면 총선 때까지 자민련의 변신은 불가능하다. 지역감정에나 기대어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한다 치자. 기껏 캐스팅 보트 역할이나 하면서 권력의 부스러기나 챙기겠다는 건가. 의석 1석 없는 민노당보다 더 낮은 지지율을 보이면서도 자민련이 재기의 꿈틀거림조차 보이지 않는 건 기이한 일이다. 이건 JP 때문인가, 지역감정 때문인가. 아니면 자민련 사람들의 '한줌도 안되는 기득권 지키기'나 용기 부족 때문인가.

김두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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