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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전쟁에서 인간은 얼마나 잔혹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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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은 '생명은 고귀하다'는 인류의 믿음을 산산이 부숴버린 비극이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이 전쟁은 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6년 동안 전 세계를 종말의 문턱까지 몰고 갔다. 60개국이 참전했고 총 1억1천만명의 병력이 투입됐으며, 전사자 2천7백만명에 민간인 희생자도 2천5백만명에 달했다.

케이블.위성 다큐멘터리 채널인 히스토리채널은 개국 2주년을 기념해 '컬러로 보는 2차 세계대전사'(사진) 18부작을 4일부터 매주 수.목요일 밤 10시에 방영한다. 이 프로그램은 종군기자나 군인들이 직접 찍은 화면을 담았기 때문에 단순한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전장에서 군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나 공포도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프로그램을 보면 연합군 지도부의 선전과는 달리 사병들이 조국을 위해 총을 든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 강제로 징집당해 전쟁터로 끌려 왔다. 이 때문에 40년 17만명 규모였던 미군은 3년 뒤 7백20만명으로 늘어났다. 전선에 나선 그들은 적군과 함께 자기 내부의 공포와도 싸워야 했다.

전투는 말 그대로 처절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처럼 상륙 작전을 하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적의 기관총 세례로 부대원 전원이 몰살당하는 일도 있었다. 밤을 이용해 적진에 침투하려던 낙하산 부대원의 상당수는 낙하 지점을 잘못 잡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휴식시간엔 맥주를 마시거나 편지를 쓰며 짧고 달콤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잘못된 성관계로 성병에 걸려 고생하기도 했다. 도박이 성행했고 담배가 화폐처럼 통용되기도 했다. 부대 내 갈등도 심했다. 같은 미군이라도 흑인이나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백인들과 생각이 달랐다.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을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와 제2차 세계대전 연구소에서 자료 협조를 받아 2년에 걸쳐 제작됐다. 지금까지 2차 대전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주로 흑백 화면이었던 것과 달리 컬러 자료 화면을 썼기 때문에 당시 모습이 더 생생하면서도 처참하게 다가온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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